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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Feb 21. 2024

그림 그리는것에 마음이 동해서 좋아

원근, 투시 생각하며 건물 그리기 연습

  몇달 째 집중력을 도둑 맞은 것 같다. '도둑 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있던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가보다. 나름대로 도둑 맞은 집중력이라도 써보려 대응 하고 있다. 원랜 30분에서 1시간 정도 한 책을 읽었는데 이제는 15분 정도 읽으면 책을 바꾼다. 몇달 전부터 과학 책인 '엔드 오브 타임'을 다시 읽고 있는데 영 진도가 안나가 편하게 읽히는 에세이로 바꿨다. 그마저도 힘들땐 브런치의 글을 더 많이 읽는다. 읽는 시간은 20년도 넘게 나를 나답게 한 시간이니까 애써서 지켜보고 있다.

  멍 때리는 시간을 늘렸다. 쉴 때는 언제나 핸드폰을 들고 숏츠를 보거나 유투브나 인스타를 봤는데 일부러 핸드폰을 멀리 두고 눕거나 소파에 기대어 앉는다. 그냥 멍하니 쉰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서 갈 때도 핸드폰은 가방 깊숙이 넣어둔다. 멍하니 쉬는 시간들을 늘리다보면 집중력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다.

  과제를 할 때도 핸드폰을 멀리 두려고 한다. 사실 외국에서 공부를 하며 영어 실력이 쑥쑬 늘 줄 알았는데 휴대폰으로 읽어야 할 논문을 찍으면 번역 앱이 바로 번역해주니까 자꾸만 사진을 찍었다. 영어로 된 글을 많이 읽는건 머리 아프니까 자꾸만 과학기술의 진보를 누렸다. 그런데 과제를 할 때는 핸드폰으로 찍고 작은 화면에 번역된 한국어를 읽고 다음 페이지를 또 사진 찍고 번역기 돌려 또 읽는 행동이 지속되다보니 집중력은 저 멀리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런 내가 질 좋은 집중을 할 때가 있다. 그림 그릴 때이다. 그림을 그리려고 준비할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지만 일단 그리기 시작하면 그림외에는 아무것도 인식되지 않는다. 분위기 좋게 배경 음악을 틀어놓는데 무슨 음악이 나오고 있는지 인식이 되질 않는다. 핸드폰으로 그릴 사진을 켜 놓고 있어서 핸드폰을 만지는 일도 없다.  한 자세로 그림을 그리다가 완성하고 나면 목이나 어깨가 조금 뻐근하다. 집중하느라 자세가 나쁜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아주 좋으냐 하면 그런건 아니지만, 요즘처럼 어느 것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내게 이런 시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


  이번주에는 투시나 원근을 생각하며 건물을 그려보는 주였다. 유투브로 1점 소실법과 2점 소실법에 대해 공부하고 느낌을 익혔다.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 주로 그림을 그리는데 밴쿠버에서 지내며 거의 자연만 찍어놔서 건물이 별로 없었다. 키 큰 나무, 너른 잔디밭, 넓은 하늘과 바다 사진들 틈에서 단순한 건물을 찍어둔 것이 없어 유투브 강의에서 예제로 보여준 현대적인 스타일의 주택을 따라 그렸다. 소실점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강의를 듣고 생각하면서 그리니 좀 더 건물처럼 그림이 그려졌다. 핸드폰과 유투브가 내 집중력은 빼앗아가지만 이렇게 손쉽게 강의를 들을 땐 좋기도 하다.


  다른 날에는 지난 겨울 산책을 나갔을 때 보았던 그림 같은 주택을 그렸다. 12월 내내 산책을 할 때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하나 둘씩 늘어나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던 집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2개의 소실점이 보였고, 나름대로 비례를 맞춰서 아늑한 집을 그릴 수 있었다. 주택 앞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그려넣는 것은 특히나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렸던 것 같다.


  

  1점 투시도는 거리나 골목, 가로수길, 기찻길 같은 풍경을 그릴 때 많이 쓴다. 사진첩을 한참 뒤돌아가서 구경하다가 2022년 10월에 갔던 퀘벡의 거리에서 눈이 머물렀다. 계단 아래로 펼쳐지는 거리인데 드라마 도깨비의 문이 있는 곳이다.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 밝혀진 조명이 낭만적인 곳이었다. 사진을 보자 여행할 때 그 거리를 내려다보며 한껏 행복했던 기분이 떠올랐다. 그 때의 기분을 다시 꺼내보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 서서 양 쪽으로 건물이 늘어서있는 거리를 그리는 것은 조금 어려웠지만 투시법을 생각하면서 나름 느낌을 내볼만 했다. 소실점을 생각하지 않고 풍경을 그릴 땐 내 눈에 들어오는대로 그림에 옮겨보려고 노력했는데 사실 잘 되지는 않았다. 어반스케치를 잘 하고 싶으면 이런 지식들을 잘 쌓아서 연습해야된다는걸 깨달았다.


  10년 넘게 그림을 그렸지만 1년에 대여섯번 정도 그려와서 느릿 느릿 실력이 쌓여왔는데 요즈음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배우고 그리니 확실히 그림이 빨리 느는 것 같다. 뭐든 이렇게 성실하게 하면 좋겠지만 마음이 동해야만 할 수 있는 일. 지금 내가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 싶어졌다는 것에 기뻐하며 하루 하루를 쌓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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