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에게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예수란 자가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나서 환전상의 가판대와 비둘기 판매상인의 가게를 뒤엎었다는 것이다. 예수란 자는 이미 죽이기로 작정했던 자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예수를 성전 모독으로 처단하라고 아우성을 처야 할 백성들이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자신들과 결탁한 환전상들과 성전제물 판매상들을 강도라고 비난하고, 성전을 허물고 다시 짓겠다는 예수에 대해 백성들이 내심 동조하는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예수란 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둥 신성모독을 일삼았으니 종교범으로 몰아 돌로 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폭리행위에 대한 백성들의 반감이 수그러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예수의 성전 정화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이 백성들의 반감에 불을 지피는 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본때를 보여야 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부당 이익을 비판하는 예수의 목소리에 대해 마땅히 적용할 죄목이 없었다.
그래서 백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형벌인 십자가형을 생각해 냈다. 성전세나 성전제물을 바치는 데에 저항할 경우, 이는 로마에 저항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십자가형을 당한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인식시켜 주고자 했다.
이것을 이행하기 위한 첫 시도는 예수 입에서 로마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을 예수에게 보내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냐고 물었다. 예수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답변을 할 경우 이를 빌라도 법정에서 증거로 삼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말로 질문의 의도를 피해 가셨다. 예수님 답변을 들은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은 이를 놀랍게 여겨 예수님을 떠나갔다.
요즘의 기독교인들은 이 예수님의 답변에 대해 너무나 슬기로운 답변이라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이 놀라 더 이상의 질문 없이 떠나갔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로마 세금 문제를 들고 갔다가 뜻하지 않게 대제사장의 폭리 행위를 지적받고 보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가는 자신들이 잘못 엮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자신들도 예수님의 답변에 내심 동조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첫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대제사장은
빌라도에게 조르는 방법을 선택했다. 빌라도가 죄목을 찾지 못했음에도 대제사장의 지시를 받은 군중이 집요하게 정치범으로 처벌해 줄 것을 요구했고, 귀찮아진 빌라도는 사건을 헤롯 안티파스에게 이첩했다.
빌라도 입장에서는 의아스러웠다. 유대 율법에 따라 돌로 쳐서 죽이면 되는데도 굳이 정치범으로서 십자가형을 내려달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갈릴리 지역을 관장하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도 정치범으로서의 죄목을 찾지 못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 결국 빌라도는 군중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십자가형을 승낙하고 말았다. 무지막지한 깡다구가 법이 되고 정의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나님은 AD 70년 성전을 허물으심으로써 빌라도로 하여금 법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리도록 한 책임을 이스라엘 민족 모두에게 물으셨다.
하나님은 지켜보고 계시고, 결국에는 심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