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르빠 Apr 30. 2024

우즈베키스탄에 잠시 출현했다
사라진 슈뢰딩거 고양이

부하라(Buxoro)는 길거리가 온통 뽕나무다. 아름드리 가로수도 자세히 보면 뽕나무고, 시내 중심지의 연못 주변을 둘러싼 고목나무도 뽕나무다. 뽕나무가 어른 팔로 두세 아름이나 되는 거목으로 자란다는 사실을 부하라에 와서 처음 알았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양잠사업을 하신 적이 있다. 대규모의 뽕나무 밭을 일구시고 잠실을 지으셔서 기업형 양잠을 하셨다. 어렴풋한 기억에 의하면 가끔 절박한 표정의 낯선 외지인이 뽕나무 벌레를 구하러 찾아오곤 했다. 뽕나무 뿌리에서 자라는 굼벵이가 뇌졸중 치료에 특효란다. 구하기가 어려워 엄청난 고가에 팔린단다. 


부하라의 뽕나무를 보고 먼 기억 속의 뇌졸중 굼벵이를 떠 올렸다. 바로 이거다! 뽕나무 굼벵이로 떼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굼벵이를 경동시장이나 한의원에 넘기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분말로 갈아 캡슐에 넣으면 건강기능 식품으로 수출도 가능하지 않을까? 


타슈켄트의 가로수에는 돗토리 나무가 많다. 가을이 되면 길바닥에 돗토리가 떨어져 발길에 챌 정도다. 그런데도 돗토리를 줍는 사람이 없다. 지인의 말로는 돗토리는 돼지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의 하나이다 보니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를 멀리하는 이곳 사람들이 돗토리도 덩달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 이거다! 현지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돗토리를 모아 묵을 만들거나 돼지를 키워 현지 한국식당에 공급하면? 


부하라와 타슈켄트의 뽕나무와 돗토리 나무가 부추겼던 달콤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이 끝을 맺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주변의 알 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답이 한결같았다. 뽕나무 잎이나 줄기, 뿌리 같은 것들은 나름대로 쓰임새가 있지만, 뽕나무 굼벵이가 뇌졸중 치료의 특효약이라는 건 처음 듣는단다. 허겁지겁 인터넷을 뒤져 보았지만 아무것도 걸려 나오는 게 없었다. 결국 아버지의 잠실을 찾아왔던 청년의 효심에 경의를 표하며 생각을 접었다. ‘이슬람 국가에서 돼지 키운다는 말을 누가 믿겠냐’는 지인의 한 마디에 돗토리 돼지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고실험을 도와주었던 부하라 특산 보드카는 확실히 목 넘김이 부드러운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우즈베키스탄 목화밭에서 울고 떠난 ‘하사와 병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