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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by 슈르빠

정들었던 헤이그(Hague)를 19년 만에 다시 방문했다. 헤이그는 현지어로는 덴하그(Den Haag)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준 열사, 그리고 헤이그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년이 갈라진 뚝에 팔뚝을 집어넣어 나라를 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는 과거를 무조건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집착증을 가진 나라다. 암스테르담의 안네의 집 등 건물이든, 도로든, 가로수든 뭐든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 한다. 주요 건물의 경우 내부는 개조가 허용되지만 외부는 조금의 개조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암스테르담 길거리에는 400년 된 건물이 즐비하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중앙차로나 정류장의 난간, 난간에 칠한 페인트 색깔, 난간 위의 화분 등 모든 세팅이 네덜란드에서 복사해 온 것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시 방문한 헤이그는 모든 것이 내가 머물던 19년 전 그대로였다. 돌벽돌을 깐 도로, 트램 번호와 디자인, 승차할 때 땡강하며 티켓 찍히는 소리에서부터 가로수, 보도블록, 필리핀 유학생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집, 스헤베닝겐(Scheveningen) 해변 쿠르하우스(Kurhaus)의 서점, 서점 내 잡지 진열대 위치 등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듯했다. 옛날과 다른 유일한 것은 나뿐이었다.


헤이그는 북해를 낀 도시라 3월 한 달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구름 끼고, 바람 불고, 추적추적 비가 온다. 그 북해 바다가를 거닐면서 나중에 분명히 이 장면을 몸서리치게 그리워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헤이그 북해 해변에는 뚝 넘어 가(假) 건물에 식당이 늘어서 있다. 비싸기만 하고 음식맛이 없는 곳이었지만 동료를 이끌고 간 입장이라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서빙을 하는 동양인 여점원이 다가왔다. 얼굴에 윤이 나고 윤곽이 선명해 무심코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한국인이란다. 나이를 물어보니 19세이고, 헤이그에서 나고 자랐단다. 엉, 19세? 헤이그?


내가 머물던 당시 헤이그의 한국 사람은 극히 제한된 수의 사람들이었고, 모두가 서로 아는 사이였다. 내가 아는 한 그 사람들 중에 이 처녀의 출현과 연관될만한 사람은 없었다. 물론 나는 더욱 아니었다.


아가씨의 대답과 함께 내가 서둘러야 했던 일은 동료에게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강력한 부정의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나는 아니라고, 나는 그럴만한 짓을 한 적도 없고, 닮은 곳도 없다고.


북해 바닷가에서 호구조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아가씨의 출생의 비밀은 풀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하링(Herring)과 포도주 한병, 나시고렝 한 접시로 끼니를 때우던 19년 전 추억에 아가씨 추억이 하나 더 얹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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