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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Apr 30. 2024

성경책보다 두꺼운 우즈벡 스테이크

집 근처 까르징까(Korzinka)의 정육점에서 쇠고기를 발견했다. 쇼 케이스에서 마블링이 전혀 없는 빨간 고기 덩이를 발견하고 점원에게 양고기인지 쇠고기인지 물어보니 쇠고기란다. 가격표에는 무게에 대한 정보 없이 한국 돈 약 9천 원 정도인 7만 숨이라는 가격만 적혀 있었다. 두리번거리는 내 앞에서 점원이 1킬로! 를 외치며 손가락으로 가격표를 가리킨다. 덩어리 크기로 보아 1Kg로 짐작은 했지만 너무 싸다 싶어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가격표에서 동그라미 하나가 빠진 걸 점원이 눈치채기 전에 빨리 주문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느껴졌다.   


한우 맛과는 달랐다. 아니, 달라서 좋았다. 마블링이라는 미명 하에 가격만 비싸고 기름기 때문에 금방 질려버리는 한우와 달라서 좋았다. 약간 질기기는 했지만 씹을수록 쇠고기 특유의 향과 고소한 맛이 났다. 어릴 때 먹던 쇠고기 맛 그대로였다. 언제든지 가게만 가면 맛있는 쇠고기를 헐값에 마음껏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정글 속 비밀동굴에서 야마시타 골드(Yamashita Gold)를 발견한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왔다.   


우즈베키스탄 쇠고기에는 왜 마블링이 없는지, 풀만 먹고 자란 소는 누린내가 난다던데, 왜 안 그런지는 알 필요도 없다. 맛만 좋으면 그만이다. 프라이팬에서 구워낸 스테이크를 덩그러니 혼자 앉아 먹어야 하는 쓸쓸함에만 익숙해지면 된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가 본 라삐욜라(La Piola)라는 현지인 식당에서 성경책보다 더 두꺼운 티본스테이크 한 판을 한국 돈 약 6천 원에 먹은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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