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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Apr 30. 2024

내면에 대한 자아성찰과 구충제

요즘은 현지 음식에 맛을 들였다. 기름기 많은 플롭(Plov)에서도 고소한 맛을 느끼기 시작했고, 슈르빠(Shurpa)에서도 고기향을 맡기 시작했다. 국물 없는 라그만(Lagman)은 고수만 걷어 내면 스파게티보다 맛있다.


근데 왜 체중이 늘지 않을까? 우즈베키스탄에 온 지 몇 달 만에 체중이 5Kg나 줄었다. 처음에는 현지음식에 적응이 안 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식사량이 늘어난 지금도 체중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생각 끝에 서울에 있는 집사람에게 구충제를 보내달라고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의 무언가와 라그만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허사였다. 구충제가 도착하던 날 바로 복용해 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잘못된 추측이었음이 증명된 셈이지만 무엇을 먹든 오직 나만을 위해 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내면에 대한 성찰이 실패로 끝난 것만은 아니었다.  


공리주의자(Utilitarian)이든 평등주의자(Egalitarian)이든 존 롤즈(John Rawls)든 그들이 주장하는 분배의 정의, 뭐든 좋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분배의 정의를 달성하기까지 ‘과정의 정의’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온전히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나눈 후의 모습보다 나누는 과정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어떤 원칙에 따라 나누든, 그 원칙에 따라 나눈다는 사실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나누는 과정을 누구나 투명하게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몰래 나누어 가지면 기생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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