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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May 01. 2024

머나먼 이국땅에서 혼혈인으로 다시 태어나다

어느 날 집에서 멀지 않은 초르수 시장(Chorsu Bazaar)을 구경하러 갔다. 시장 입구에서 한 우즈베키스탄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한국어로 말을 건넸다. 내게 한국에서 왔는지를 물어보더니 자기가 안내를 해주겠단다. 자신은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인데, 한국어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대가 없이 가이드 역할을 해주겠단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기도 했고 이국의 정서를 혼자서 맛보고 싶다는 생각에 정중하게 거절했다.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Registan) 광장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 젊은 학생이 다가오더니 한국말로 관광 가이드를 해주겠단다. 목적은 초르수 시장에서 만난 학생과 같았다.


택시를 타면 택시기사가 우즈벡어나 러시아어로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다, 무슨 말인지는 정확하게 몰라도 까레야(Корея)라는 단어로 미루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면 대우, 엘지 등의 단어가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거나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사람이 사라졌다. 


집사람과 큰 아들이 타슈켄트를 방문했을 때 하스트 이맘(Hast Imam) 사원에 구경을 갔다. 사원과 같이 있는 무이 무보락 도서관(Muyi Muborak Library)과 바라크 한 마드라사(Barak Khan Madrassa) 관광을 마치고 나오는 데 한 무리의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이 다가왔다. 한국말로 자신들은 타슈켄트 여주대학교(Yeoju Technical Institute in Tashkent) 한국어학과 학생들이라고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혹시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우리가 지금 한국말로 대화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한국 사람이 아니겠냐고 하니 겸연쩍게 웃으면서 우즈베키스탄 사람인 줄 알았단다. 그들의 목적도 한국어 실전경험 쌓기 가이드였지만 관광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 제안을 거절하고 돌아섰다.   


그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우즈벡 공무원 한 사람이 오랜만에 나를 보더니 이젠 완전히 우즈베키스탄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다. 거기에다 우즈벡인과 러시아인의 혼혈 같다는 구체적인 설명까지 곁들여 주었다. 설명이 구체적이다 보니 더 이상 이의를 달 수조차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 사이 길거리나 택시에서 현지인 대하듯 대놓고 우즈벡어나 러시아어로 말을 건네는 사람이 많아졌던 것 같다. 


문어도 아니고 인간의 머리통은 뼈로 고정된 것인데, 그렇게 쉽게 바뀌는지 놀랍기도 했지만 현지인과 비슷해졌다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가스피탈리 미라바드 바자르 주변에는 한국인이 많이 산다. 그래서인지 시장의 물가가 다른 곳 보다 약간 비싸기도 하고, 가게 주인에 따라서는 한국인에게 가격을 조금 높게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서 현지인처럼 보이는 이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전략이 필요하다. 가게에서 대뜸 영어로 가격을 물어보면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금방 드러나기 때문에 일단 진열된 과일이나 채소를 기웃거리며 가게 앞을 지나쳐 간다. 지켜보는 가게주인으로 하여금 방금 지나간 사람은 현지인이라는 인식을 무의식 중에 심어준 다음 다시 그 가게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건조한 표정으로 채소나 과일을 집어 들고 돈을 건네면 두 말 없이 현지인 가격 기준으로 잔돈을 거슬러 준다. 


가끔은 가게주인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나 혼자서만 생쇼를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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