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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May 02. 2024

엄마와 새엄마

정수에게 새엄마는 가증스러운 여자였다. 정수가 중학교 1학년이던 지난해 엄마가 돌아가시고 1년이 채 안 돼 철규를 데리고  들어온 새엄마는 정수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수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병상을 지켜주었고, 자신이 데리고 온  철규보다 정수를 항상 먼저 챙겨주었다.


그러나 정수에게는 그 모든 것이 아버지의 신임을 얻기 위한 가식으로만 느껴졌다.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정수의 그리움이 너무도   깊었지만 새엄마는 그런 엄마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가구며, 버티컬이며 집안의  모든 걸 바꾸었다.


엄마의 남은 흔적인 자신도 새엄마의 눈에는 고깝게 느껴졌겠지만, 겉으로는 늘 미소로 대하는 새엄마의 모습에서 정수의 마음은 오히려 더욱 싸늘하게 돌아섰다.


어떨 땐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새엄마를 보고 있으면 역겹기까지 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커져만 갔고 급기야 아버지에게 대들기까지 했다.

"그냥 아빠랑 나랑 둘이 살면 안 돼?"

"이러려면 나는 청주 할머니집에 가서 살래!"

"아빠는 새엄마랑 철규 데리고 잘 살아!"


"이 노무 자식이!"

아버지의 호통에도 정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대답은 단호했다.

"안돼!"

"정 그러면 방학 때 할머니 집에 가서 며칠 있다가 와!"


방학 시작하는 날 바로 청주로 내려갔다. 할머니는 평소와 달리 정수를 반기지 않으셨다.

"지 미랑 같이 살지 여긴 뭐 하러 와?!"

"며칠 놀다가 미한테 빨리 돌아가"


"새엄마랑 살기 싫어요!"

완강한 정수를 보고 할머니는 정색을 하시더니 "어이구" 하는 한숨과 함께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죽은 니 미가 아이를 못 낳아서 할 수 없이 니 아비가 너하고 철규를 밖에서 낳아온 거여"


"너는 죽은 니 미가 직접 키우고 싶다고 해서 어려서 데리고 왔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펄 벅 같은 대작가가 썼을 법한 거대한 장편 소설의 주인공이었다는 충격에 정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할머니, 지금 이게 말이 돼요?, 영화 찍으세요?"


"이놈이 할미한테 말버릇이.."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니 아비 한데 직접 물어봐라"


정수는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아버지에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완전 소설의 주인공이 됐네, 이거 맞아?"


흥분해서 몰아치는 정수의 질문에 비해 아버지의 대답은 길지 않았다.

"그러게..."


골목으로 뛰쳐나간 정수는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엄마 나 클 났어.  이제 어떻게 해, 나 엄마 아들  맞는 거지?" 


엄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정수야 나 잊으면 안 돼, 알겠지?' 하말의 뜻을 이제야 깨달은 정수는   새벽이 오기까지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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