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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에 서서

by 슈르빠

/반짝이는 자유/


여울물이 반짝이는 까닭은, 그것이 서로 다른 물길로 흐르기 때문이다. 햇살은 매 순간 다른 각도로 물결을 쓰다듬고, 물은 결코 앞선 물을 흉내 내지 않는다. 새로움이란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다름 속에 진실의 무늬를 새기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 또한 각자의 물길로 반짝이며 흐른다.


/아끼고 사랑할 의무/

저작권 보호의 의미와 당위성은 법 조항이나 제도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감성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생명에 대한 본질적인 존중에서 비롯된다. 창작물이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창작자의 경험과 고통, 기억과 상처, 기쁨과 절망이 응축된 하나의 생명체다. 따라서 창작물을 보호한다는 것은 단순히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창작자라는 존재와 그 삶을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우리는 늘 창작의 씨앗이 되는 삶의 단편들과 마주한다. 살이 굽은 양산을 받쳐든 아내의 앙상한 손목, 무심코 들른 공중화장실 거울 속 초라한 자신의 얼굴, 밤공기를 가르며 대리운전을 나서는 아버지를 묵묵히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동자. 이런 장면들은, 먹먹한 가슴이나 쓴웃음 하나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 마음 깊숙이 자리한 생의 파편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운명처럼 그 삶의 조각들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 한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일 수도 있고, 혹은 타인과 감정을 나누며 공감이라는 매개를 통해 정서적 유대와 인격적 성장을 이루려는 욕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세상과 나누는 방식은 ‘표현’이며, 그 표현을 완성하는 도구는 바로 ‘창작’이다.


그러나 진정한 창작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체면’이라는 단단한 껍데기를 스스로 벗겨내고, 그 안에 숨겨진 가장 깊은 감정과 마주하는 고통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창작물을 보호한다는 것은, 창작자가 기울인 노력과 살아온 삶 전체를 존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법적 문해력이 아무리 낮아도, 훔치는 일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타인의 창작물을 허가 없이 복제하고, 배포하거나 전시·공연·방송·변형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도둑질과 다르지 않다. 훔쳐도 죄가 되지 않는 것은 막내딸 시집가는 날 친정어머니 눈가에 맺힌 눈물밖에 없다. 남의 글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베끼고도 칭찬받을 수 있는 건 성경 필사밖에 없다.


창작은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존재하는 방식이다. 그 소중한 표현 하나하나를 존중하는 일이야말로 서로의 삶을 여울물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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