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면도날과 구원

by 슈르빠

면도날 위를 걷고 있는 개미는 한 발만 삐끗해도 면도날 위에서 떨어지고, 다시 면도날 위로 돌아갈 수 없다.


경제성장론에는 ‘면도날 균형’(razor blade balance)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해로드-도마(Harrod-Domar) 모델과 같은 고전적 경제성장 이론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제기된 개념으로, 한 번 균형 성장 경로에서 이탈하면 자력으로는 다시 그 경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론상의 문제를 가리킨다.


불교의 윤회 사상에 따르면, 삶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업보가 쌓이면 다음 생에는 인간이 아닌 동물로 태어날 수 있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덕을 쌓아야 한다. 이때 반려견이나 러브버그로 태어난다면 약간의 기회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나 시궁창의 쥐 같은 존재로 태어난다면, 덕을 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인간으로 돌아갈 기회도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면도날 위의 개미든, 해로드-도마든, 윤회든, 뭐든 상관없이, 세상에서 저지른 죄와 잘못을 단번에 용서받고 면도날처럼 좁은 구원의 길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없다. 죽음으로도 용서는 받을 수 없다. 죽음은 단지 죄의 대가이지, 용서의 조건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누구든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의 길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 문을 열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