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천국의 경계 어디쯤
너튜브 알고리즘이 포항 죽도시장에서 개복치를 해체하는 영상을 올려주었다. 거대한 몸통은 온통 청포묵처럼 허연 기름 덩어리였고, 뼈는 연골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세상을 견딜 단단한 근육도, 뚜렷한 자기 색깔도 없이 흐물흐물 살아온 나를 닮은 것 같다. 그래도 삶아 놓으면 최고의 술안주가 된다는 개복치처럼, 허접한 인생이라도 누군가의 술자리 안줏거리라도 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었다.
적자생존의 치열한 생태계에서 '좋은 게 좋다'는 안일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온 나는 나태한 영혼에게 세상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막연한 기대만으로는 항아리에 곡식을 채울 수 없다.
너튜브 알고리즘은 또 다른 영상을 골라주었다. 응급실에서 막 의식을 되찾은 어린 소녀의 눈은 환상을 보고 있었다. 1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너무 아름답다고 울먹였다. 수없이 핀 꽃과 나비도 너무 아름답다고 했다. 꽃과 나비가 아니더라도, 예수님과 함께 하는 곳이라면 그곳은 천국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세상의 즐거움과 도파민만 좇으며 빈들의 마른풀 같은 영혼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 전 예수님이 꿈에 나타나셨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오매불망 한 번만이라도 주님 얼굴 뵈옵는 것을 일생의 간절한 소망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비록 꿈이었지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런 만큼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감격에 겨워했어야 마땅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흰 가운을 입고 수염을 기르신 예수님은 그림에서 늘 보아오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셨다. 그분은 내 옆에 머리를 박고 엎드린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셨고, 나는 허락도 없이 그 손 위에 내 손을 살짝 얹었을 뿐이었다.
예수님이 나를 외면하신 이유를 나는 안다. 세상과 천국의 경계 어디쯤에서 적당히 안주하려는 영혼을 칭찬하실 리 없지 않은가. 어쩌면 너튜브 알고리즘이 보여준 두 개의 영상은 우연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