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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Apr 30. 2024

어머니

by 슈르빠

한 길까지 가는 겨울의 강둑길은 

아직도 새벽녘의 어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들판을 가로질러 온 새벽바람은 

간밤에 내린 눈으로 시리게도 차다. 


어머니는 가방을 든 아들의 손이 

못내 가슴에 아린다.


인근 도회지의 친척집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주말이라고 집에 돌아온 아들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이라 

한시라도 더 품에 두고 싶어 


월요일 새벽 첫차로 돌려보내는 어머니는 이제야 후회를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해 그름에라도 보낼걸...’


“가방 이리 다오. 머리에 이게.”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들 녀석은 터벅터벅 발걸음만 내딛는다. 


코밑에 거뭇거뭇 수염이 돋기 시작한 아들 녀석은

집 앞을 나서면서부터 말이 없다. 


아들 녀석은 사춘기가 되면서 어머니와 같이 다니는 것조차 싫어한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늘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다니는 

어머니의 모습을 죽도록 창피해한다. 


발등을 돌아가며 누런 털이 나 있는 털신을 

봄까지 신고 다니는 어머니의 모습을 진저리 치게 싫어한다.


“혼자 가면 되는데 뭐 하러 따라 나와!”

퉁명스러운 아들 녀석의 한 마디에는 짜증이 잔뜩 배어 있다. 


아들 녀석은 그나마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새벽녘에

길을 나선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들 녀석이 얼만 전부터 새 교복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올해 마늘 농사짓거든 보자" 하면서도 학비며 하숙비며 그마저도 힘겨운 어머니는 스스로도 자신이 없다. 


노래를 부르다시피 하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자신이 죄스럽기만 하다. 


“바람만 좀 안 불어도 좋겠구먼...”

부질없이 바람 탓을 해보지만 허허로운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그 순간에도 어머니는 

아침을 먹이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아들이 안쓰럽다.

“가방 안에 삶은 계란 넣어 두었으니 버스에서 먹어라” 


“엄마, 제발 좀 그러지 마! 창피하게!” 


버스 안에서 주억주억 계란을 까먹는 창피함을 참아낼 아들이 아니다. 

앞집에서 빌려 온 것이 분명한 계란을 남의 눈치 보며 까먹는 비참함을 무릅쓸 아들이 아니다. 


강둑길이 끝나고 한 길에 다다르면서 버스가 도착했다. 

“차 조심하고, 자주 오너라”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외면한 채 아들은 떠났다. 


어머니는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진 후에도 

뒤따라가는 바람이나마 아쉬워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놈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병치레다.

오뉴월에도 감기라는 감기는 지나치는 법이 없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원주로 3박 4일간 수련회를 간단다. 

아들 녀석은 신이 나서 들떠있지만 아버지는 걱정이다. 


물을 갈아먹어 배탈이나 나지 않을까, 사고로 다치지나 않을까, 

온갖 걱정이 앞서지만 공식적인 행사인 만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아내가 시장을 다녀왔다.  

아침을 거르고 일찍 출발해야 하는 아들을 위해 계란을 사 왔다. 


“계란 삶아 줄 테니 내일 아침 버스에서 먹어” 


"....................."


무심코 내뱉는 아내의 한마디가 컥! 하고 가슴을 친다.  


그리고, 

아들은 운다.

어머니의 아들은 운다. 

해진 털신을 끌며 쓸쓸히 강둑길을 되돌아갔을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운다. 


그동안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수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오늘 또 바늘처럼 아프게 찔러 오는 기억에 어머니의 아들은 운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아들이 탄 버스가 떠난 후에도 한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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