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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Apr 30. 2024

공주 가는 길

by 슈르빠

청양을 거쳐 진도까지 가는 출장길은 멀기만 하다. 

물어물어 올라탄 시골버스는 끝도 없이 달린다.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에 나그네는 이유 없이 우울하다. 


버스는 공주 조금 못 미쳐 어느 시골마을 앞에 정차한다. 

나그네는 자기와는 상관없는 또 한 번의 정차로만 생각한다. 


오래만의 긴 외출로 깨끗이 잊으려던 상념들이 

고스란히 이곳까지 따라와 나그네 곁에 머문다. 


버스가 좀처럼 출발하지 않는다. 

무료함에 익숙해져 있던 나그네조차 주의를 가다듬는다. 


건너편 승강구 쪽에서 떼를 쓰는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무슨 이유인지 아이가 버스 타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듯하다. 


한참 동안의 실랑이 끝에 어른들 손에 번쩍 들려 버스 안에 모습을 드러낸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소녀이다. 


아이는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버스 바닥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운다. 

소녀를 데리고 나선 구릿빛 얼굴의 촌노(村老)가 소녀의 아버지란다. 


소녀는 늦게 얻은 막내딸인데 농아라고 한다.

지금은 공주에 있는 특수학교에 입학시키러 가는 길이라 한다. 


가까스로 소녀를 자리에 앉히고 그 옆에 자리를 잡은 촌노는 

그제야 거친 손으로 눈가를 훔친다. 


남의 눈치 보며 품 안에 키우던 딸을 

이제 남의 손에 내보내는 아버지의 눈물이리라. 


나그네는 다시 창가에 머리를 기댄다.


울지 마라 꼬마야. 

너는 지금 네가 평생을 살아가야 할 세상으로 나가고 있는 거란다.


네 울음소리 하나로 네 뜻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듯이 

세상이 그렇게 두려운 곳만은 아니란다. 


눈물을 아껴 두어라 꼬마야.

너도 자라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아 기를 때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먼 훗날 마디 굵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그리움을 달랠 눈물은 남겨 두어야 하지 않겠니?  


공주 가는 길은 자꾸만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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