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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Apr 30. 2024

이발소에서 나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까지의 긴 여정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하기 며칠 전 단골 미장원에서 이발을 하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두었다. 머나먼 중앙아시아의 낯선 이발사에게 무방비로 머리를 내맡길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안경을 벗으면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이발을 마치고 안경을 썼을 때 사막의 유목민이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할 자신이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에 온 지 한 달이 넘으면서 이발할 때가 다가왔다. 자주 다니던 동네 마가진(구멍가게) 점원이 길 건너 미장원 한 곳을 소개해 주었다. 가게 앞의 입간판과 여러 장의 수건이 걸린 빨래대로 보아 미장원일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남자 이발도 하는지 확신이 없어 그냥 지나치던 곳이었다.      


한국에서 찍은 사진을 휴대폰 화면에 띄운 채 미장원에 들어섰다. 미장원 내 풍경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용사 두 사람이 먼저  온 손님의 머리 손질에 여념이 없었고, 여자 손님 몇 명이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기척을 내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길래 큰 소리로 이발을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때서야 미용사 한 사람이 다가와서 뭐라고 말을 건넨다. 무슨 뜻인지 몰라 어정쩡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내 앞에서 미용사는 손가락으로 X자를 만들어 보이기도 하고, 팔에 찬 손목시계를 가리키기도 하더니 급기야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자리에 앉으라는 신호 대신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복잡한 몸짓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여자 손님만 받는 곳인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그렇다면 마가진 점원이 미장원 앞까지 따라와 안내를 해주었을 리 없었다. 일단 의자에 앉아 X자와 시계의 조합(combination)을 이용해 몇 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추론해 보았다. ‘시계를 차고 오지 않아 이발을 해줄 수 없다’ 거나 ‘시계를 찬 팔뚝이 아파 이발을 해줄 수 없다’는 등의 현실성 없는 시나리오는 제외하고 나니 ‘늦은 시간이라 안 된다’가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미용실을 찾아간 시간이 토요일 아침 10시 경이라 이것도 가능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나니 ‘바빠서 안 된다’가 마지막 남은 시나리오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게 맞다’는 확신이 들어 미용사에게 언제 찾아오면 되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나의 질문과는 상관없이 미용사의 뜻 모를 대사는 계속되었다. 느낌으로는 이미 같은 말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절망감과 함께 앞으로 가수 들국화나 자연인처럼 꽁지머리를 묶고 살아야 하나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때, 머리 손질을 받고 있던 한 여자 손님이 영어로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영어가 반갑게 들리기는 처음이었다. 지루했던 온갖 추론과 상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여자 손님을 통해 들은 사건의 전말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외출 중인 남자 이발사가 저녁 6시에 돌아오니 그때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여자 손님은 ‘매우 감사합니다’라는 뜻의 ‘가타 라흐맡'(katta rahmat)을 연발하는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덧붙이며 설명을 끝냈다.       


저녁 6시에 다시 찾아간 미장원에는 초원의 기마전투병 같이 생긴 남자 이발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턱 선을 따라 수염을 짧게 기른 이발사는 필요 이상의 용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번뜩이는 검은 눈동자에서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마스터피스만들고야 말겠다는 듯한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남자 이발을 하는 곳은 미장원 안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이발사에게 사진을 보여 주며 이대로 깎아 달라고 요구했다. 사진을 유심히 살피던 이발사는 머리를 끄덕이며 ‘오케이!, 오케이!’를 외쳐댔다. 오케이의 반복 횟수에서 이발사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안경을 벗을 수 있었다.      


한국과 달리 머리 감는 세면대가 의자 앞에 있었고, 이발을 시작하기 전에 머리부터 감았다.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난 이발사는 서랍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를 생각나게 하는 가죽혁대를 꺼내 찼다. 가죽혁대에는 이름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도구들이 허리 한 바퀴를 다 돌도록 꽂혀 있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커트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전동커터가 훑고 지나간 자리 위로 가위질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가위와 빗을 부딪치며 머리카락을 털어 내길래 이제 끝인가 보다 싶으면 금방 가죽 혁대에서 새로운 도구를 뽑아 들었다. 이발사는 가위질이 많을수록 서비스가 좋은 것으로 아는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이발사의 잘못된 가치관과 과도한 의지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이발을 마치고 안경을 쓴 내 앞에 비타민 C 결핍에 시달리는 원시인 하나가 슬픈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옆머리는 수많은 가위질을 견디다 못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고, 윗머리 모퉁이에는 까치가 집을 짖어 놓았다.     


타슈켄트 지리에 조금 익숙해지기를 기다려 다른 이발소를 찾아갔다. 그랜드 미르(Grand Mir) 호텔 건너편 남자 전용 이발소였는데, 정작 이발사 본인은 이발을 필요로 하지 않는 대머리였다. 사진을 보여주자 이발사는 활달한 목소리로 자신감을 표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여전히 나를 신석기인에 머물러 있게 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던 차에 마침 한국에 출장 나올 일이 생겼다. 곧장 단골 미장원으로 달려가 스트레이트 파마를 했다. 모서리의 들뜬 머리 숨을 죽여 눕혔다. 미장원 의자에 앉아 있자니 시집갔다 처음 친정에 온 며느리의 설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한국교민으로부터 미라바드 바자르 근처 미장원 한 곳을 소개받았다. 미장원에 들어서니 주인처럼 보이는 미용사가 홀 뒷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대여섯 명쯤 되는 여자 미용사들이 방안 가득 앉아 있다가 일제히 내게로 시선을 모았다. 나에게 미용사를 고르라는 뜻인가 싶어 당황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미용사가 나를 고르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 미용사에게 보여주었다. 정면, 옆면, 뒷면으로 찍은 사진 세 장을 미장원마다 보여주고 다니다 보니 강력계 형사가 범인을 탐문하고 다니는 것 같았다. 미용사의 터치는 담백했다. 전동 커터에 이어 가벼운 몇 번의 가위질로 끝을 맺었다.      


결과는 ‘극만족’이었다. 정면 거울에서 현대인으로 진화해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우 만족’까지의 5점 척도에서 6점을 주고 싶었다. 연신 감사하다는 내게 미용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잃어버렸던 본래의 나를 되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세상에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번 잃어버리면 회복하기까지 먼 길을 돌고 돌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동네 마가진을 지나치다 가끔 초원의 기마전사를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가죽혁대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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