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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Apr 30. 2024

유누스 라자비 쓰레기장에서 살아 돌아오다

타슈켄트에 도착한 지 3일째에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 유누스 라자비(Yunus Rajabiy)라는 동네에 월세 아파트를 구했다. 집주인에게서 전자레인지, 세탁기, 다리미, 에어컨, TV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열쇠를 넘겨받았다. LG 제품이 많았지만 안내문이 러시아어라 쉽지 않았다. 쓰레기봉투는 가게에서 주는 비닐봉지를 그냥 쓰면 되고, 쓰레기장은 아파트 뒤에 있다고 했다. 


다음날 저녁 집 앞 공원 주변을 서성이다 비닐봉지 여러 개를 양손에 움켜 쥔 남자가 아파트 앞을 성큼성큼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때까지 쓰레기장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 두지 않았던 터라 그 남자를 따라가면 쓰레기장 위치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남자의 뒤를 쫓았다. 그러자 앞서 가던 남자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한 참 동안 뒤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두 세 차례 반복하고 나니 괜히 오해를 받을 것 같아 추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라 아침부터 쓰레기장을 찾아 나섰다. 쓰레기장은 지난밤 추격을 포기했던 지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조폭이 상대조직원을 가두어 놓았을 것 같은 쓰레기장 입구에는 녹슨 철문이 달려 있었고, 쓰레기장 안에는 청소차에 적재하는 커다란 철통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쓰레기봉투를 챙겨 다시 쓰레기장으로 갔다. 그런데 아까는 보이지 않던 할아버지 한 분이 바닥을 정리하고 있다가 눈썹 밑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둔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쓰레기장 관리인인 듯한 할아버지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머리는 구소련 붕괴 이후 한 번도 감지 않은 듯했고, 옷차림은 방금 부산행 영화를 찍고 돌아온 듯했다. 한적한 쓰레기장에서 할아버지의 강렬한 눈빛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쓰레기 버리러 왔다가 목숨을 버리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할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내가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를 가리키더니 자기 발 앞에 내려놓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극히 엄숙한 표정으로 보아 만약 지시를 어길 경우 내가 쓰레기봉투에 담길 것만 같았다. 이어진 할아버지의 몸짓으로 보아 봉투 속을 뒤져보려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혹시 봉투 안에서 발견되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엉거주춤 서 있던 내게 부산행 할아버지가 러시아말 몇 마디를 내뱉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게 쳐다보는 내게 “이런 ✗신아, 빨리 꺼져!”라는 뜻으로 추측되는 손짓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숨을 헐떡이며 집에 돌아와 찬물 한 컵을 들이켰다. 마치 911 테러에서 살아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후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극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밥, 국, 찌개에 모두 생수를 써야 했던 터라 늘어나는 페트병을 감당할 수 없었고, 며칠에 한 번씩은 쓰레기장을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스피탈리 시장에서 쇠고기 1kg을 샀다. 사자나 호랑이가 아니고는 한꺼번에 다 먹어 치우기 어려울 정도로 양이 많았다. 한 번에 먹을 만한 덩어리로 잘라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가끔 스테이크를 구워 먹었다. 


어느 날 한국에서 온 손님을 모시고 초루스 시장을 구경하게 되었다. 정육점이 모여 있는 돔(pavilion dome)에 갔을 때 한국 손님이 빨갛고 껍데기가 붙어 있는 생고기를 발견하고는 무슨 고기인지 물었다. 내가 얼마 전 가스피탈리 시장에서 샀던 쇠고기와 똑같이 생긴 고기였다.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자 자신감이 북받쳐 올라 “쇠고긴데요, 한국에 비해서 엄청 쌉니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동행했던 현지인 가이드로부터 “말고깁니다!”라는 짧고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그랬다. 말고기였다. 유달리 빨갛고 껍데기까지 붙어 있더라니. 그러고 보니 스테이크가 좀 질긴 것 같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말고기를 쇠고기보다 더 고급으로 여긴다고는 하지만 말고기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꺼림칙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 후 몇 달 동안 말고기는 냉동실에서 음식을 꺼낼 때마다 걸리적거리는 귀찮은 존재로만 남아 있었다.  


사실 쓰레기장에는 할아버지 외에도 할아버지의 부인으로 추측되는 할머니 한 분이 더 계셨다. 할아버지와는 달리 항상 친절한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다. 냉동실이 비좁아 말고기를 처분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얼어 있던 말고기 덩어리들을 봉지에 담아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무조건 버릴 생각은 아니었고 쓰레기장 할머니가 원하시면 드리고 올 생각이었다. 할머니에게 고기를 건네자 할머니는 엄청나게 고마워하시며 스파시바(Спасибо)를 연발했다. 어차피 안 먹을 거였는데 감사 인사를 받으니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던 할아버지가 엄지를 슬쩍 치켜세우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하염없이 북받쳐 올랐다.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이 고기는 가스피탈리 바자르에서 산 것”이라는 둥 할머니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설명을 덧붙이며 감동의 여운을 즐겼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쓰레기 더미에서 유리병이나 페트병을 골라내어 수입을 얻고 있었다.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촛싹촛싹 슬리퍼를 끌고 나타난 외국인에게 페트병이 든 봉투는 수거함에 넣지 말고 자기에게 주고 가라는 심오한 스토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을 것이다. 나와 처음 조우했을 때의 할아버지의 무서운 표정은 그 난감함의 또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오른손 검지로 쓰레기봉투를 가리키는 동작 하나만으로 모든 설명을 퉁치려고 시도한 그 자체가 당황스러움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여행은 낯섦을 즐기는 것이라 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내게 가장 절실한 낯섦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 쓰레기장 할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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