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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May 17. 2024

사는 곳을 알려줄 수 없어요

세상에는 내가 사는 집을 반드시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타슈켄트에는 아파트 이름이 없다. 번호만 있다. 시골 시어머니가 못 찾아오게 어렵게 지은 아파트 이름 같은 건 더더없다. 동네와 아파트를 구분 짓는 담벼락도 없고 정문 경비실 같은 것도 없다.


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택시를 타고 무슨 아파트를 가자고 할 수도 없다.


동네 이름이나 인근의 유명한 건물의 이름으로 근처에 도착한 다음 집 앞까지 남은 길은 직진, 우회전, 좌회전 등으로 택시를 한 땀 한 땀  이끌어 가야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국제경찰 인터폴 건물 근처에 있었다. 인테르폴(인터폴) 건물을 모르는 택시기사는 없었다.


집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길이지만 골목이 꼬불꼬불하여 '또르게'(직진)와 '짭게'(왼쪽), '옹게'(오른쪽)를 수없이 외쳐대야 했기에 보통은 인터폴에서 내린 다음 집까지는 걸어갔다.


인터폴 건물 앞에서 내리는 나를 택시 기사들은 외국에서 파견 나온 국제경찰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경찰치고는 생긴 것이 워낙 허접하여 조사받으러 가는 범인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인터폴 길 건너 지역을 현지인들은 '젬축'이라 불렀다. 젬축은 진주라는 러시아어이고, 과거에 그곳에 보석(진주) 상가가 있었다고 한다.

인터폴을 몰랐을 때 젬축이라는 지명으로 택시를 잡으려 해 본 적이 있다.


생소한 발음의 젬축을 기억하기 위해 '재미있는 축구'라는 단어를 머리에 각인시켰다.


어느 날 처음으로 젬축을 시도하려는데, 앞에 뭐가 붙은 축구라는 것만  머리에 떠올랐다.


엉겁결에 '미축', '펀축' 등 몇 가지를 던져보았다. 안타까워하는 나를 뒤로 하고  택시는 가버렸다.


아파트 이름이 없어 생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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