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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May 12. 2024

타슈켄트에서 맛보는 잔치국수

택시기사에게 타슈켄트 한인교회 위치를 가르쳐 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스마트폰 앱으로 지도를 보여주어도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보통 서너 대 정도 허탕을 치고 나서야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거의 3개월 동안 한인교회를 오가던 어느 날 한 택시기사가 '아메리카노 쉬꼴라'라고 하면 택시기사들이 쉽게 알아들을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사실 이 말조차 알아듣기 쉽지 않았다. 교회 인근에서 택시를 내릴 때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친절한 표정을 지으며 '아메리카노 쉬꼴라!'를 외치는 택시기사의 얼굴을 보고 어렵게 해독해 냈다. 교회 인근에 있는 국제학교를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신기하게도 한 번의 시도만으로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오늘 교회 점심은 잔치국수다. 한국에서는 평소 멸치국물로 만든 잔치국수를 좋아해서 3∼4인분 정도는 먹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타슈켄트의 여러 한인식당에서 잔치국수를 먹어 보았지만 예외 없이 잔치국수로 명명되기에는 부적합한 것들이었다. 맹물에 양념을 푼 것 같은 국물은 그렇다 치더라도 면발이 냉면 면발이거나 칼국수 면발이라 잔치국수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잔치국수를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주변 교민들에게 한국식 소면 파는 곳을 수소문하여 꾸일육 시장(Qoyliq Dehgon Bozori)의 고려인 상점에서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어 냈지만, 시장 이름조차 916인지 뭔지 괴이하기도 했고, 뉴욕시 전봇대 옆의 그로서리를 찾아가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려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타슈켄트 지리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에야 두어 번 꾸일육 시장을 찾아가 봤지만 소면 파는 고려인 상점은 끝내 찾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리스트에 잔치국수를 올려놓고 한참을 잊고 살았다. 그러던 차에 오늘 교회에서 점심으로 나온 잔치국수를 마주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택시를 쉽게 잡게 되면서 오히려 예배에 지각하는 일이 잦아졌던 게으른 영혼에게 주님께서 잔치국수를 베풀어 주시니 그 은혜가 놀라울 따름이다.


대가 없이 베풀어 주시는 것이 은혜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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