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by 별빛단상

하루 밤낮을 사이에 두고 끝과 시작을 의미하는, 장례식과 결혼식장을 번갈아 가며

방문하고, 다음날은 젊음을 상징하는 달리기 대회까지를 내닫는 촘촘한 행보가 있었다.


생노병사라는 만고의 진리에 부합하여, 사람이 태어나 짝을 만나 삶을 누리다가,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의식이,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혼례 의식이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의 축복과 격려라는 교집합의 묘한 앙상블이다.

우리나라도 언제인가부터 사람의 삶이 일상의 의식 치르듯 크고 작은 다반사가, 정형화되어 가고 있어, 관혼상제의 형식이나 절차라는 것이 사람의 편익에 따라 모듈화 되어간다.


진보되었으면 하는 것도 있다.

100세 시대에 수(壽)를 다하고 떠나는 사람에게는, 침울한 분위기보다는 편안하게 안식을 발복, 기원하는

축제처럼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장례 의식이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도 치러진다고 하니까


멀지 않은 기억으로 회자되는 시간 전, 큰 소리로 과장하여 억지 곡소리를 내야 하는 것도 부족해 곡소리를

대신 내주는 곡비(哭婢)를 두고서 애도하는 마음을 대외적으로 과장하여야 하였던 허례와 가식이 존재하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사라진 구시대의 산물일 뿐이다.


언젠가 어느 지인이 장례 의식을 필름 사진으로 보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영화 같은 기록을 남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의례적인 일이 아니었기에

그 파격이 대단한 행위로 간주 되면서도, 먼저 간 선인(先人)의 ”역사를 기록“ 하는 일이라면

하는 식으로, 일견 수긍이 되기도 하는 일 이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도 슬픔을 삼키는 상가에서 카메라를 들이민다는 것은 크게 반발을 각오하여야 할

사안으로 애도의 장소에서는 금기시 되어있는 일을 누군가 그 일을 행하였다는 것이다.


시간은 세상을 변모하게 한다.

세상의 슬픔도,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승화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추억하고 인정하게 되는 단초가,

곧 시간 아니던가?


관혼상제의 장소에서 우리보다 윗 항렬의 어른은 거의 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길흉화복의 인간사를 겪는 자리에서도 구세대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간혹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항렬 높은 어른들이, 보이지 않아 안부를 물으면 대부분 자리보전하여 거동이

불편하다는 소식은, 이면에 대비되는 씁쓸함과 애잔한 마음으로 존재한다.


일요일, 늦은 단풍마라톤을 명명한 마라톤은 써늘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북새통으로 성업이다.

안양천을 달리는 단풍마라톤에 아내와 사위가 참가하여 큰딸과 나 그리고, 지난주 하프마라톤을 완주한 막내까지 가족들이 출동하여 응원부대를 이루다.


이른 시간 임에도 일찌감치 자리 잡은 마라토너들의 열기가 추위를 잊게 하다.

수많은 인파 들이 출발선상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결혼행진곡에 맞춰 행진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신혼부부

마라톤 출발선상에서 첫걸음을 내딛는 마라토너,

그들의 출발은 희망이라는 꿈을 가진 힘찬 기대감이다.

모든 시작이 행복과 희망이라는 꿈을 간직한 아름다운 것이기에, 하나가 되어 그들을 격려하고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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