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기 위한 요건

마흔에게?

by 정구

독서모임에서 [마흔에게_기시미이치로, 2018]를 읽었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느낌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몇 가지는 기록해 두고 싶다.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생산성'의 관점을 계속 유지하다 보면 자신이 '쓸모없다'라고 느껴지는 때가 온다. '존재의 불안'이 커질수록 목소리를 높여 서운함을 토로하고, 관심 가져 달라고 외치게 된다. "나이가 들면 애가 된다"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더 잘 이해된다. 그러고 보면 사회생활을 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된 후 느끼게 되는 감정도 비슷한 점이 있다. 우리는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는 것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는 교육풍토에서 자라났다.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소위 '바깥일'은 중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굳건히 내면화되어 있다. 결혼, 육아 등의 이유로 경력단절된 여성이나 현역? 에서 은퇴한 자들은 사회에서는 이제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한데 달리 나의 존재가치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당황하게 된다. 무엇으로 인정받을 것인가?


저자는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타인의 평가와 관계없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기'(p.122)를 든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너무나 인정해도 자칫 나르시시즘에 빠져 혼자 정신승리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혼자만 괜찮(다고 착각하)고 주위 사람들을 파괴한다. 다행히? 저자는 진정한 행복이란 '타자공헌'(p.198)이라는 말도 덧붙이며 "나에게 가치 있음을 생각할 수 있을 때는 '나'의 행동이 공동체에 유익할 때뿐이다."는 아들러의 말을 인용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른이 되기 위한 요건에서 말하는 '가치'란 적어도 공동체에 유익한 가치여야만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의 인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한다. 어쩌면 '어른되기'는 글러먹었다. 타인의 '인정'을 구하는 방법이 좀 더 교묘히? 숨겨질수록 '어른'에 가까워지는 건지도.


갑자기, 기존의 이론을 뒤집은 학자나,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낸 예술가들, 관습적인 사고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산 선각자들의 '용기'가 새삼 존경스럽다. 물론, 안 보이는 곳에서도 길 위의 쓰레기를 줍는 그런 사람들도 존경받을 만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도덕관념에 바탕한 행동인 반면에, 전통적이지 않은 생각은 내 편이 잘 보이지 않는 외로운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아무도 인정해 주는 이 없어도, 이 것이 옳다고 믿을 수 있는 자신만의 가치기준을 가진 사람만이 그런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거창해졌다. 어른되기란 거창한 것이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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