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_레이먼드 카버

마음속에 그린다는 것은

by 정구

“(생략)... 나는 그저 자네에게 그게 어떤 형태로든 신앙심이 있느냐고 묻고 싶은 거야...(생략)”


“뭘 믿는 건 없다고 봐야겠죠. 아무것도 안 믿어요. 그래서 가끔은 힘듭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물론이네.”


“그렇습니다.”



맹인의 손을 포갠 채 대성당을 그린다.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그린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는 느낀다. 그는 분명히 안에 있었지만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음을 느낀다.


작품 속 ‘나’는 머릿속에 별다른 텍스트가 없는, 말하자면 피상적인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 ‘맹인’은 그저 안내견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웃는 법이 없는 이미지뿐이었다. 아내가 중요한 일이 있은 후엔 꼭 쓰곤 하는 ‘시’에 대해서도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냥 변변찮은 시라고 생각했던 것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에게 있어 이름은 인종을 구별하는데 쓰이는 정도인 듯하다. 맹인의 아내 이름을 듣고 유색인종, 니그로-미국에서 흑인을 낮춰 부르는 말-정도를 떠올리는 수준이다. 그에게 맹인이 부탁을 하나 한다. 대성당을 설명해 달라고.


맹인에게 대성당을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맹인의 손을 포개고 대성당을 그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만으로는 느낌이 잘 오지 않았다. 저녁으로 소맥에 고기를 배부르게 먹고 돌아와 아이와 함께 소설 속의 그와 맹인이 한 것처럼 한 사람은 눈을 감은 채 손을 위에 포개고 한 사람은 그림을 그려 맞추기를 해보았다. 소설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었지만 상황이 제법 비슷했다. 우리도 밥을 아주 배불리 먹었고, 기분 좋게 술도 좀 마셨고. 어설프게 악어와 공룡(아이가 즐거워할만한 주제이다) 따위를 그리며 나는 나만의 악어를 새롭게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것이 악어임을 손가락과 연필의 움직임과 끼적이는 소리만으로 아이와 공유해내야 했다.


대성당을 그려본다. 종교건축의 절정기를 이룬 고딕양식의 교회가 떠오른다. 높이 솟은 뾰족한 탑, 신비로운 그림이 있는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화려한 조각상들, 거대함, 장엄함, 엄숙함..... 소설 속 맹인이 묻는다. 어떤 형태로든 신앙심을 갖고 있나?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종교로서의 신앙일 것이다. 신뢰를 넘어서 경외하고 우러르는 것. 두려워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맹목적인 믿음. 우리는 자주 지치고 넘어지므로 그렇지 않은 존재를 상상해 내는데 능하다. 어벤저스 같은 영웅들에 환호하는 것도 어떤 면에선 종교에 대한 신앙과 비슷하다. 초월적인 신에게 기대기.

살면서 힘들 때는 기댈 곳이 필요하다. 어떤 이에겐 그곳이 교회일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겐 서너 평짜리 실험실일 수도 있다. 과학자 호프 자런의 [랩걸]에서 저자는 “내 실험실은 교회와 같다...(중략)... 내 실험실은 도피처이자 망명처이다.”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있어 실험실은 최선의 ‘나’로 고양될 수 있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아마도 자신이 기대했던 엄마노릇- 에 대한 죄책감을, 해내고 있는 일들로 대체하는 '신성한’ 곳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자신이 세운 가설을 증명해 내는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어느 소설가에게는 책이 휴대용 피난처라고 했던가. 언제 어디든 가지고 다니며 도망갈 수 있는 ‘상상’의 세계. 텍스트로 이루어진 세계. 정밀한 텍스트로 이루어진 보다 넓고 견고한 나만의 세계. 어떤 이에겐 그것이 내 안의 신, 내 안의 대성당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성당’이라는 소설 속의‘나’는 눈을 감고 대성당을 그려 보이다 마침내 어떤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것이 분명하다. 안에 있지만 안에 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 그의 세계는 어떤 곳으로 확장해 나간 것일까? 그에게도 이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세계, 그의 마음속 대성당이 보이기 시작했을까?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의 마음속 대성당을 맹인과 공유하는 일일 것이다. 나만의 세계를 나 혼자만 갖고 있다 보면 필연적으로 외로워지고 불안해지고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설명해내고 싶어지는 것이다. 결국에는 ‘소통’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좀 헷갈린다. 내가 믿는 것은 신인지, 신을 믿고 있는 무리에 속하는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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