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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 Apr 27. 2020

브런치가 내 삶을 바꿔버렸다

생애 가장 감사한 시작

    어느 날 오전, 그러니까 딱 브런치를 먹기에 적절할 시간에 그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브런치 어때?

    

출근해서 정신없는 와중에 이게 뭔 헛소리인가 싶다. 아점 말하는 거냐고 되물으니 '글 쓰는 브런치'라는 답이 돌아온다. 브런치? 그러고 보니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작업 중이던 엑셀 창을 내리고 초록창을 켜서 '브런치'를 검색한다. 페이스북으로 회원가입을 하고 이것저것 눌러보는데 제법 구미가 당긴다.


2018년 여름, 나는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했다. 홍대의 어느 바에서 만나 스쳐 지나간 짧디 짧은 인연의 추천으로.




    작가 신청을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써 둔 글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 수업을 들을 때 과제로 썼던 에세이도 있고, 작은 소식지에 제법 오래 연재했던 책과 영화 추천 글도, 매번 사랑에 실패할 때마다 보내지 못할 편지처럼 써 내려간 일기들도 있었다. 종류에 따라 세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나름 고심해서 이름을 지었다. 사랑이면 사랑, 평론이면 평론- 한 가지 명확한 주제가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냥 늘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어느 한 가지도 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잡탕 브런치로 일단 시작해 보기로 한다. 뭐든 시작이 중요한 거니까, 그렇게 위안을 삼으며.


다행히 기대한 바와 같이 한 번에 작가 승인이 났다. 부랴부랴 그동안 내 노트북에 꽁꽁 묵혀 왔던 글들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먹는 사람이 있어야만 요리가 완성될 수 있는 것처럼 글에도 반드시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때로는 그 독자가 오직 글쓴이 단 한 명뿐이더라도, 세상에 읽히지 않기 위해 쓰이는 글은 없는 것이다.


평생 끊임없이 이런저런 글을 써 온 사람이니 블로그니 SNS이니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지만 온전히 경계를 풀고 내 마음속 글을 내려놓기에 적당한 그릇은 찾을 수가 없었다. 가족이나 친구 같이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묵직한 속마음이기도 했고, 대다수 그런 플랫폼들의 주인공은 사진이나 영상이지 글 그 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사실 나는 내가 쓴 글의 가장 큰 독자이자 팬인데, 무심코 하드를 정리하다 몇 년 전 감정에 휩쓸려 써 내려간 글들을 발견할 때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와, 맞아 그랬었지. 내가 이때 이렇게 느꼈었구나- 그때의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되었다. 감정의 정수에서 허우적대며 썼던 그 글들이,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날 만큼 희미해졌다는 사실이.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꽁꽁 혼자만 감싸 안고 있던 감정들을 브런치에 마음껏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냥 나 혼자만 들어와 봐도 괜찮아, 나만의 추억의 장이 되어도 괜찮아. 그렇게 생각했는데 조회수가 하나 둘 오르고 첫 구독자가 생겼다. 나는 그때 허겁지겁 첫 구독자 알람을 캡처해 친구들 단톡 방에 날랐다. 정작 내 브런치 주소는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구독자가 열 명, 댓글이 한 개, 조회수가 100에 다다를 때마다 호들갑을 떨며 내 글에 반응해주는 미지의 독자들에게 깊이 감사했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길까, 싶었는데 3개월 만에 첫 제안이 도착했다. 메일 제목을 클릭하며 어찌나 설렜는지. 한 편당 만원씩 지불하고 내 글을 어느 소셜 플랫폼에 개제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저 취미로 끄적거리는 이런 글 한 편에 만원씩이 나요?! 글로 먹고사는 게 늘 꿈이었던 나에게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물론 큰돈은 아니었지만 월세에 조금이나마 보탤 수 있었고 사실 그것보다는, 내가 쓴 글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전시된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그로부터 반년쯤 지나 두 번째 제안이 도착했다. 이번 제안은 수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첫 번째 제안 못지않게 큰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셰어하우스에 관련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중 일부를 '같이 산다는 것'을 주제로 한 청년들의 필사 전시회에 사용해도 되는지 문의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나는 흔쾌히 허락했고, 많은 이들이 내 글을 나눠 읽고 공감한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https://brunch.co.kr/@21jess/63


세 번째 제안이 온 것은 그로부터 5개월 후였다. 회사에서 메일을 클릭한 나는 잠시 후 그대로 얼어붙었다. 빽빽하게 쓰인 아래 부분까지 갈 필요도 없이, 첫 문단부터 이렇게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 출간과 관련해 문의를 드리고자 메일 드립니다.

메일을 몇 번이나 꼼꼼히 읽어 내린 나는 조용히 화장실로 가 문을 잠갔다. 변기 뚜껑 위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 숨을 한번 크게 내쉬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기뻐서 엉엉 우는 건 아마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로부터 약 반년이 지난 지금, 나의 첫 책 작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계약서를 쓸 때 느꼈던 벅차오르는 감동은 조금 아득한 것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출간 작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 이외에도 감사한 순간들은 넘쳐났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연재하고 있고, 몇 백명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제법 괜찮은 스펙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글로 먹고살 수 있는 날이 과연 언제 올진 모르겠지만, 나만 내 글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브런치가 확실하게 증명해 주었기에 실로 내 삶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용기를 내서 나와 영 맞지 않았던 큰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고, 제대로 된 마케팅 경력도 없이 브런치 주소 한 줄만으로 여러 스타트업에서 입사 제안을 받았고, 내 글이 가진 힘을 믿기에 그 회사마저 미련 없이 뛰쳐나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 2020년 봄, 현재의 내가 제법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유는 사실 모두 브런치 덕분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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