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는 말미잘 같은 아이였다. 건드리기만, 아니 쳐다보기만 해도 부끄러워 엄마 뒤에 숨어버리는 아주 소심하고 예민한 아이. 갓난아기 시절 옆집 아줌마가 놀러 왔을 때는 눈 하나 깜빡 않고 누워있어 "어머 어쩜 인형 같죠~" 하고 넘겼는데 뭔가 이상해 다시 보니 낯선 사람에 놀라 경기를 일으켜 마비된 상태였다고. 덕분에 어린 엄마는 눈물 콧물 잔뜩 빼며 큰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다행히 살아남아 10대가 되었으나 전화도 못 받아 버스도 못 타, 음식을 주문하거나 길을 물어보는 건 상상만으로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렀더랬다.
물론 지금은 누구에게 물어봐도 'O형', '맏이', 혹은 mbti 'EXXX'로 추측되는 어른으로 반전 성장하였으나, 뿌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인지 성인이 된 뒤에도 종종 이런 소리를 듣곤 했다.
왜 너는 말할 때 눈을 안 봐?
내가 남들 눈에 이상해 보일 정도로 눈을 잘 안 마주치는구나-, 를 처음 깨달은 것은 무려 22살 때였다. 호주로 떠났던 워킹 홀리데이, 오페어로 갔던 첫 번째 집의 노부부가 내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봤던 것이다.
"저... 혹시 너네 문화권은 원래 눈을 잘 안 마주치니?"
예상치 못한 질문에 몹시 당황했지만 나 하나로 인해 한국인, 나아가 동양인은 '샤이'하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까 봐 허둥지둥 나만 이렇다, 모르는 새 습관이 되어서 잘 인지하고 못하고 있었다고 답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살짝 충격을 받았는데, 한국에서는 내가 눈을 잘 마주치지 않더라도 그것을 콕 집어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노부부 역시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물어봤던 이유는 내 영어 표현이나 뉘앙스를 고쳐주면 감사하겠다고 앞서 부탁해 놓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답변에 그들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화할 때 상대의 눈을 바라보지 않으면 경청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오해를 살 수도 있거든. 그래서 혹시나 물어봤단다."
대화를 할 때 서로 눈을 마주 보는 것. 사실 한국에서도 기본적인 예의라면 예의이지 않는가.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해서 말꼬리를 흐렸던 것 같다. 아 우리도 그래요, 그렇긴 한데....
그때부터 내가 남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않는다는 걸 자각하고 고치려 애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한 번에 고치기는 어려운 습관이었다. 펄펄 끓는 물에 발을 담그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보다 많은 용기와 인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3초 마주치고, 3초 돌렸다가-, 미간이나 인중으로 시선을 얼버무리기도 하고, 정 부담스러운 상대라면 쳐다보는 척 뒤통수 너머 벽을 응시하기도 하며.. 그래도 조금씩, 꾸준히 타인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에 적응해 나갔다. 아니 사실, 여전히 적응해 나가는 중이다.
약 10여 년의 적응기를 거쳐온 지금 나는 오히려 상대를 빤히 바라보는 쪽에 가깝지만, 여전히 본능처럼 자연스레 행해지지는 않는 걸 보면 나는 애초에 말소리가 들리면 그쪽을 바라보도록 설계된 인간은 아닌 듯싶다. 그저 '말을 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예의 있는 행동이다'라는 명제가 보편적인 사회성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알기에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을 뿐. 플라스틱 용기를 깨끗이 씻어 분리수거하거나 볼링 칠 때 옆 레인 순서를 기다려주는 것처럼, 내게 눈 맞춤이란 인간 사회에 큰 불화 없이 녹아들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규칙들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눈 마주치기에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후, 내가 은연중에 시선을 피했던 이유는 상대의 눈에 비칠 내 모습에 자신이 없어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빤히 쳐다보다 보면 숨기고 싶은 내 결점들까지 훤히 드러나 보이지 않을까, 혹시 내 어떤 표정이 이상하지는 않을까- 그런 것들이 신경 쓰여 정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남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깨달은 것은 정작 내 그런 행위가 오히려 숨기고 싶은 것들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대가 못생기고 잘생긴 거야 굳이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이고, 오히려 눈을 쳐다보지 않거나 아주 잠깐 흔들리는 동공으로 마주하고 곧 다른 곳을 어색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을 더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
상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그 눈동자, 시선을 올곧게 맞이하는 것만으로 바빠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어진다. 가령 '딴생각하다 들키면 안 되는데, 집중해야지'라든가'이쯤에서 고개를 끄덕여서 경청하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겠군' 같은 생각들이 머리를 채워 실제로 더 대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반면, 상대가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주의력은 분산되어 버린다. '눈을 잘 안 보네.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인가..', '저기에 저런 점이 있네, 특이하군', '혹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나? 왜 이 쪽을 쳐다보질 않지?' 등등 주제를 이탈해 끝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혹시 이전의 나와 같은 이유로 시선을 회피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필사적으로 상대의 눈을 바라봐야 한다. 외모의 수준과 관계없이, 상대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화 내내 집중하는 태도는 언제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눈을 잘 마주치고 말하는 것만으로 당신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당당하고 떳떳한 사람,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어떻게 보면 탄탄하게 쌓아온 훌륭한 내면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눈 마주치기'인 것이다.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실제로 어떤 꿍꿍이, 시커먼 마음을 가지고 있든 간에 성실히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상대를 속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편한 인생'을 위한 패시브 스킬이나 다름없는 셈인데, 혹시 아직도 없다면 슬슬 장착할 때가 되었다.
얼마 전 고향에 내려갔다 문득 깨달았다. 우리 아빠는 얘기할 때 내 눈을 보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아빠는 평생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왔고 리더 역할을 해왔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오히려 넘쳐흘러서 문제일 것 같은 사람이 정작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니? 혹시 22살의 나에게처럼 누군가 콕 집어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여전히 모르시는 걸까, 아니면 내가 오히려 다 큰 딸이라서 남보다도 어색한 걸까, 혹은 나한테 숨기시는 거라도 있는 걸까...?
어쩌면 성격, 성향과 관계없이 눈을 잘 마주치거나 마주치지 않는 습성도 유전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한국인 유전자에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게 우성이라서 유독 샤이한 코리안들이 많은 게 아닐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여하튼 오늘도 나는 다른 이들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나를 외향적이고,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평가할 테니까. 이 세상에서 그럭저럭 기능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