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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 Apr 22. 2021

어느 못난 십 대에게 보내는 편지

예쁘지 않아도 귀엽지 않아도 괜찮아

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하교 중인 '급식이' 들을 마주쳤다. 편한 체육복 차림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갈 뿐인데 다들 어쩜 그리 싱그러운지 시선을 한참 빼앗겼다. 얼굴의 삼분의 일을 덮고 있는 마스크조차도 그 풋풋하고 앳된 모습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내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단 한순간도 스스로를 싱그럽다거나 앳되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10대 초반의 나는 언제나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초등학생이지만 고등학생이냐는 소리를 들었고, 네 살 많은 언니와 있으면 누구든 나를 큰 딸로 생각했다. 10대 후반의 나는 쉬는 시간마다 두꺼운 고전을 읽었고 머리를 짧게 자랐다. 친구들은 나를 '소년'이라 불렀고 나는 스스로를 성숙하고 보이시한 존재로 규정지었다.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자아를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내가 '소녀'답다거나 '여성'스러운 것과 거리가 멀다고 느꼈던 것 같다. 엄마가 기껏 예쁜 원피스를 입혀 보내면, 이건 내가 아닌 것 같다며 울상을 짓고 돌아와 바지로 갈아입고 나갔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생물학적 여성이며 성 정체성 역시 여성이고, 아직까지는 이성애자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하지만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성에 나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핑크나 레이스, 치마 같은 것에 격한 거부 반응을 보여 왔고 학교에 들어가 교복을 입고 나서야 치마를 입은 내 모습이 그렇게까지 우스꽝스럽지는 않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춘기 아니랄까 봐 외모 콤플렉스도 많았다. 두툼한 입술도 싫었고, 떡 벌어진 직각 어깨도 싫었고, 까무잡잡한 여드름 피부는 더더욱 싫었다. 친구들의 희고 깨끗한 피부와 얄쌍한 입술, 옷걸이 같이 처진 조그마한 어깨를 열망했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면 조금이라도 입술이 얇게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 자꾸 아랫입술을 깨무는 통에 사진 기사님을 애먹였고, 몸을 둥글게 말아 굽히고 다니며 모든 이들의 어깨를 매의 눈으로 재단한 덕에 세상에서 내 어깨가 제일 넓은 게 분명하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또래에 비해 노안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사회가 십 대 여자아이들에게 기대하는 상큼함이나 귀여움 같은 것은 나에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덕목이라 여겼다. 어른들이 "너네 때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 다들 얼마나 예쁜지-"와 같은 찬사를 보낼 때면 시니컬하게 '하지만 전 아니겠죠-'라고 생각했다. 발랄하고 귀여운 내 친구들과 달리 나는 예뻐할 만한 구석이 없는 칙칙하고 뻣뻣한 아이일 거라고. 당시 내 자존감이 그토록 낮았던 걸까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나는 그저 내가 순진무구하고 사랑스러운 스타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 대신 어른스럽고 똑똑하며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데에는 의심이 없었다.




수능을 보고 난생처음 파마를 한 것을 시작으로, 성인이 되자마자 신나게 스스로를 꾸며대기 시작했다. 싸구려 옷과 액세서리, 구두들을 잔뜩 사들이고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듯 어색한 화장을 얼굴에 얹었다. 첫 남자 친구를 사귄 것도 그때였다. '소년'으로 19년을 산 것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짧은 치마를 입고 부지런히 아이라인을 그렸다. 물론 여전히 레이스와 핑크랑은 친해질 수 없었지만,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눈두덩이를 새카맣게 칠해놓으니 놀랍게도 꽤나 '여자'같이 보였다. 무척 촌스럽고 어색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사회인이 되자 스킬과 재력이 레벨업 되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뭐가 나한테 제법 잘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게 되었고, 재미있게도 학창 시절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두꺼운 입술과 직각 어깨는 이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석이 되었다. 가까운 지인들은 여전히 나를 터프하고 무뚝뚝한 사람으로 인식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은 그럴듯하게 원피스와 구두에 안착한 내 모습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른 초반인 지금은 어떨까? 흥미롭게도 나는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회귀 중이다. 엄마가 보면 등짝을 후려칠만한 짧은 옷가지들은 처분해버린 지 오래이고, 매달 뿌리 염색을 하던 갈색 긴 머리를 싹둑싹둑 잘라나가다 못해 이젠 귀 위까지 바짝 쳐버렸다. 여전히 스스로를 특별히 귀엽거나 예쁘지는 않지만 똑똑하고 재밌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땐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열망하느라 내적 열등감에 시달렸다면 지금은 내가 가진 것에 쿨하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의 취향과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알아가는 과정이지 싶다. 삼십 년쯤 살아보니 이제야 나다운 게 뭔지 감이라도 잡겠다. 나는 편한 옷과 신발을 좋아하고, 액세서리를 귀찮아하고, 꾸미는 것에 딱히 재능도 욕심도 없는 사람이다. 10대 때와 달리 30대의 내가 이걸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20대 시절 그 모든 것들을 겪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에는 주류에 속하지 않는 나의 취향이 불안했으리라. 왜 나는 친구들처럼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지 않을까, 왜 깜찍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을까, 왜 여자애들은 늘 팔짱을 끼고 화장실까지 같이 가야 하는 걸까, 왜 나는 남자처럼 무뚝뚝하고 무심한 걸까, 역시 나는 남자로 태어났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여자'답지 않은 나를,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애초에 여자와 남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성별이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짧은 머리가 남성만의 것이 아니듯, 상냥하고 애교 많은 성격이 여성만의 것은 아니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남자도 있고, 파란색을 좋아하는 여자도 있다. 성별을 떠나 개개인의 성향일 뿐이지만 두터운 사회적 편견 때문에 색안경을 내려놓고 그 사실을 직시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삼십 대의 나도 아직 그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는데 십 대 시절의 나는 오죽했을까. 오직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성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감히 스스로를 싱그럽지 않은,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라 오판했다.


그 시절 내게는 사진을 찍는 것도, 그 결과물을 보는 것도 큰 고역이었다. '소녀' 답지 않은 내 모습이 그토록 못나 보였기 때문이다. 모두 풋풋하고 제각각 방식으로 사랑스러운 아이들 중 나만이 잘못 끼어 있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한참 동안 내 사진을 볼 때마다 그렇게 느꼈기에 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용기를 내어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찾아본 적이 있다.


거기엔 누가 보아도 앳된 얼굴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소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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