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섬 너머
확실히 다섯 명이 한 집에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피가 섞여도 그렇고, 섞이지 않아도 그렇다.
성도 고향도 직업도 mbti도 제각각인 우리들이 한 곳에 모여들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생판 모르는 남남들의 조합 치고 꽤나 그럴듯한 울타리를 쳐놓고 서로를 감히 가족이라 칭할 수 있는 건 우리에게 외향성, 책, 호기심, 고양이, 멋진 삶에 대한 열망 따위의-, 그다지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최소한의 공통점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사는 2인실에는 언젠가부터 거대한 핑크색의 섬이 자리 잡았다. 그 섬은 여름과 가을에는 촘촘한 구멍이 뚫린 흰색으로 바뀌었다가, 날씨가 추워지고 모기의 엥엥대는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면 다시 희뿌연한 핑크빛으로 모습을 바꾼다. 정확히 말해 내 룸메의 침대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섬은, 빨래도 서랍 속 물건도 자꾸만 섞여 들어가는 우리에게 최소한의 경계선을 제공해준다. 그저 등만 돌리면 각자의 탈의실이 될 만큼 스스럼없는 이 좁은 방 안에서, 내부 공기를 덥혀준다는 것 외에도 난방 텐트의 역할이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꺅 모기 들어온다, 혹은 언니 나 잘게, 지이익- 한치의 틈 없이 텐트의 문이 굳게 닫힐 때면 그 얇디얇은 천 너머의 나는 어쩐지 덩그러니 버려진 기분이 든다. 저기요, 문 좀 열어봐요. 모기랑 나랑 아직 여기 있다고요. 우리도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고요.
나와 룸메의 침대 사이 간격은 고작 50cm. 사실상 나란히 누워 있는 거나 다름없는 우리들은 같은 천장을 바라보며 하루의 경계가 훌쩍 지나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럴 때는 선심이라도 쓰듯 텐트의 머리 부분이 열려 있다. 억울하게도 그 틈 너머 들여다보이는 까맣고 노란 머리칼이나 체크무늬의 베개 같은 것에 나는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말소리가 잦아들고 나지막이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면, 아 오늘도 남겨져 버렸다. 내일은 먼저 떠날 수 있을까. 몸을 웅크리고 눈을 꼭 감아본다.
다음 날 아침 방문을 열고 나가면 조금 더 다채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다섯이 함께 쓰는 거실과 주방, 함께 돌보는 고양이, 내가 보지 않는 신문과 내가 마시지 않는 커피가 자유로이 떠다니는 공간.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지만 각자의 앞에는 너무나 동떨어진 세계가 펼쳐져 있으리라.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우리들은, 실은 우주만큼이나 아득하게 멀다. 몇 년을 함께하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도 포용하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완전한 공동체인 동시에 완벽한 타인이다. 하지만 다섯 개의 독립된 섬인 우리들은,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하나의 군도를 이룬다.
셰어하우스 생활 3년 차, 다섯은 가장 조화로운 숫자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쉽지도 넘치지도 않는 완벽한 균형의 숫자. 그 안에서 내가 5분의 1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5분의 4를 채워줄 타인의 온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는가.
다섯 사람과 고양이 한 마리가 섬을 이루는 그곳으로, 오늘도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