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재 Sep 19. 2023

네가 예뻐서 매일매일 나는 운다

박가온 임보일기#4 너의 조각들 

임시보호 10일 차, 가온이를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모습을 발견 중. 

산책할 때 다른 강아지한테 관심 없다고 했던 것 취소. 친구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멀리서부터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가까이 가고 싶어 끙끙 난리 난리를,,, 종종 허락 맡고 냄새 맡게 해 주는데 가온이만 들이대고 친구들은 부담스러워해서 내가 대신 부끄러..

우리 동갑이래!

짖음, 낑낑댐 없이 조용하다고 생각한 것 취소. 처음에 얌전했던 건 낯선 환경 & 좋지 못한 몸 컨디션의 조합 때문이었던 듯, 하루하루 마음을 열어갈수록 깨발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긴 가온이는 이제 11개월 한창 응석받이일 때인 걸~! 

이 냄새 너무 좋아!

식욕 전혀 없다고 했던 것 취소. 정확히는 식탐이 없다기보다 아직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모른달까, 사료나 간식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고 이것저것 줘봐 가며 좋아하는 취향을 찾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보통 강아지들보다 식탐이 적은 편인 건 아직까지는 맞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열흘 전과 달라진 것들, 더 귀엽고 더 사랑스럽고 더 예쁘고 더 똑똑하고... 고작 열흘 만에 몸에 있던 상처들이 제법 많이 아물었다는 것. 호기심 많은 아기 강아지처럼 꼬리와 귀를 나풀거리며 사방을 쏘다니기 시작했다는 것. 우리를 보호자로 인지하고 의지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제 편들어줄 이가 생겼다고 씩씩하게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고작 열흘 만에, 우리가 가온이를 너무너무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오늘은 의미 깊은 날이다. 가온이와 함께 첫 훈련을 시작한 날이니까. 가온이와 나는 함께 반려견 지도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평생 동물을 키워 왔지만 정식 훈련을 받아본 적은 없다. 개라는 동물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많은 개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했다. 첫 임보 강아지인 가온이와 함께 하기에 더욱 뜻깊다. 이 훈련이 끝날 때쯤, 우리는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가온이는 예상했던 대로 똑똑한 녀석이었다. 근래 본 유기견 출신들 중 가장 반응도 좋고 가능성이 보인다고. 훈련을 잘 받으면 대회 출전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씀 주셨다. 큰 강아지들의 냄새가 가득한 공간에서도 쫄지 않고 당당히 배변을 하고 여기저기 실컷 냄새를 맡고 다니는 가온이. 훈련소에는 강하고 큰 개들의 냄새가 가득해서 처음 왔을 때 냄새도 맡지 못할 정도로 잔뜩 얼어있는 개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가온이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지금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자칫하면 분리 불안으로 발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고작 울타리 하나만 건너 있을 뿐인데도 혼자 있기 싫다고 깨갱깨갱 난리가 났다. 

같이 있을래!


가온이는 여전히 잘 앉지 않는데, 훈련사님도 주의 깊게 살펴보시더니 상처가 덜 아물어서 불편해하는 것 같다고 말씀 주셨다. 충분히 나으면 자연스럽게 앉기 시작할 테니 그때부터 앉아 훈련을 해도 늦지 않다고. 오늘은 가온이가 간식을 쫓아다니게 하는 훈련부터 시작했는데 가온이 보다도 내가 먼저 열심히 뛰어다녀야 해서 힘들었다.. 이거.. 가온이가 아니라 내가 걱정인 걸. 덕분에 같이 건강해지겠다. 




엊그제는 가온이와 대공원에 다녀왔다. 사람도 강아지도 정말 많은 공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견주분들이 가온이를 아기 강아지로 알아봐 주셨다. 딱히 크기나 외모 때문은 아닌 것 같고, 뭔가 어쩔 수 없는 애송이의 태가 나는 걸까? 점잖게 걷는 다른 녀석들과 달리 신나는 발걸음으로 나풀나풀 뛰어다녀서일까? 아무튼 귀여워 죽겠다 우리 눈에만 애기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도 애기라니. 

달리기 좋아!


가온이와 질릴 때까지 실컷 달렸다. 조금 걷다가 가온이가 흘끔흘끔 뒤돌아보며 눈치를 주면 달리고 싶다는 신호다. 그러면 한 100미터 실컷 함께 내달리고, 좀 걷다가 또 달리고, 그렇게 두세 시간이 훌쩍 흘러간다. 공원 안에 반려견 놀이터가 있다길래 가보고 싶었는데 결국 찾는데 실패했다. 다들 진이 빠질 때까지 걷고 뛰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가온이가 살짝 앞발 한쪽을 저는 것 같다. 아직 다 안 나았는데 너무 무리한 걸까? 내일은 좀 차분히 걷기로 한다.


가온이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문득 숨이 너무 가쁜 것 같다. 좀 전까지 뛰어 논 것도 아닌데. 분당 호흡수를 재보니 거의 90회에 육박한다. 찾아보니 40회 이상만 되어도 긴급이라고. 이전에 심장병과 폐수종으로 키우던 아이들을 보낸 적이 있어 갑자기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가온이 구조 센터에도 동영상을 공유하고, 호흡은 가쁘지만 불편한 기색은 없어서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다. 다행히 다음날 깊이 잠들었을 때를 보니 호흡수가 나쁘지 않다. 상처 때문에 옷을 입혀뒀는데 그게 좀 더워서 숨이 가빴던 모양이다. 길지 않은 순간이었지만 가온이가 피부뿐 아니라 내장까지 크게 다쳤다고 생각하니 말할 수 없이 속상했다. 몸 상처가 그렇게 컸는데 그래 속이라고 멀쩡할까 싶고. 다행히 나의 기우였던 듯싶지만 가온이가 제발 오래오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처는 많이 아물었지만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피부는 엉망이다. 여기저기를 끊임없이 물고 핥고 긁어댄다. 


가온이는 사랑받고 싶을 때 가만히 다가와 사람 가슴에 머리를 쿠웅 하고 기댄다. 지긋이, 오래. 얼굴을 떼면 티셔츠에는 동그란 코 자국이 남는다. 


가온이는 밤에도 함께 자고 싶어 끙끙 앓는다. 하지만 안 돼, 강하게 얘기하고 밖을 가리키면 이내 수긍하고 터벅터벅 제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잘 자다가도 가끔은 서러운지 끙끙, 울어본다. 

사랑한댔잖아..


가온이의 발은 굳은살로 가득하다. 아스팔트 위 생활을 얼마나 오래 했길래.  


가온이는 처음엔 뼈다귀가 뭔지도 모르더니, 이젠 잇몸에서 피가 날 때까지 집요하게 물어뜯는다. 

뼈다귀 좋아!


누워있는 가온의 다리를 만지면 뒷다리를 번쩍 들어 등을 바닥에 대고 배를 훤히 드러내 보인다. 자존심도 없나. 


그냥, 언젠가는 희미해질 수 있는 가온이의 조각들. 





*임시보호가 더 궁금하다면? 

https://pimfyvirus.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