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온 임보일기#5 멋진 강아지가 되는 법
나의 첫 임보 강아지, 가온이가 온 지 스무 날 정도가 지났다. 가온이는 빠르게 적응 중이다.
훈련 2회 차, 가온이는 지난주보다 훨씬 집중력이 좋아졌다. 당시 해먹에 올라가는 건 좀 어려워했는데 이번에는 거침없이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인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소파의 미끄러운 재질이 불편한지 올려줘도 바로 내려갔는데, 며칠 만에 훌쩍 잘 뛰어올라오고 누구보다 편하게 누워있을 줄 안다.
멀미도 좋아졌다. 처음에는 차를 탈 때마다 먹은 걸 전부 토했는데, 세네 번 이후부터는 적응이 끝났는지 의젓하게 잘 탄다. 더 이상 토를 하지도 않고, 끙끙대지도 않고, 차에 타면 딱 켄넬 안에 자리를 잡고 씩씩하게 앉아있을 줄 안다. 운전하다 뒤를 흘긋 보면 누워서 잠을 청해 보기도 하고, 가끔 차가 급정거를 하면 원망스러운 눈빛을 쏘기도 하며 제법 세련된 탑승객의 자태를 뽐낸다.
가온이는 뭐든지 빠르다. 이런 건 정말 나를 닮았다.
새로 발견하게 된 가온이의 문제 행동. 친구들을 너무 좋아하는데, 무례하다. 제대로 인사하는 법을 몰라서 친구를 보면 얼굴부터 들이대고 킁킁대는 통에 어딜 가나 면박을 받는 중이다. 다른 아이들과 사이가 좋다는 강아지도 가온이만 보면 으르렁대고, 참을성이 좋은 아이도 가온의 등살을 못 견디고 자리를 뜬다. 얼마 전에 강아지들과 작은 모임을 했는데, 가온이가 있을 땐 불편하게 제자리만 지키던 녀석들이 가온이가 자리를 뜨자마자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평화롭게 인사를 나눴다. 가온이는.. 왕따다.
가온이 같은 강아지는 다른 강아지에게 인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매너 좋고 단호한 강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가며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오늘 훈련소에서 멋진 보더콜리 형을 만났는데, 가온이에게 요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녀석이 가온이를 열심히 외면하기도 하고, 적절히 으르렁, 컹컹을 외치며 꾸짖어도 가온이는.. 잘 모르는 눈치다. 상대가 싫다고 의사를 표현해도 싫은지도 모르고, 어떻게 정중하게 소통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천방지축. 제 딴에도 답답한지 낑낑대고 짖고 난리를 한참 치다가 제풀에 꺾여 조용해지기는 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래도 빠르게 배우겠지 가온이는! 얼마나 멋진 개로 성장할지 기대된다.
몸도 빠르게 낫는 중이다. 구조된 지 한 달이 좀 지난 셈인데,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이 아물었는지. 지금은 큰 딱지는 거의 떨어지고 빨간 새 살이 돋아나는 중이다. 간지러운지 여전히 몸 여기저기를 긁긴 하지만, 이젠 넥카라도 할 필요 없고 목욕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집에 있으면 이렇게 쉽게, 빨리 나을 수 있는 상처가 보호소에서는 한참을 간다고 한다. 다양한 컨디션의 수십 마리 유기견이 함께 있는 데다가, 흙바닥에 비를 맞을 수도 있는 야외 견사가 많다 보니 상처가 계속 덧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더군다나 조금이라도 아픈 아이들은 입양의 기회를 갖기도 더욱 어렵다. 그래서 가온이 같은 아이들에게는 임보의 기회가 더욱 절실하다. 빠르게 치유도 하고 가정 적응 훈련도 받으며 미모와 개성을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상 어느 유기동물도 가족을 찾을 수 있다.
날이 지날수록 자랑하고 싶고 기록하고 싶은 가온이 모습이 너무 많다. 지 덩치는 신경도 안 쓰고 무릎에 올려달라고 발을 척 올리는 모습이나, 품에 안겨 있으면 목덜미를 핥다 은근슬쩍 셔츠 단추를 입에 넣고 잘그락거리는 모습, 화분의 예쁜 돌멩이나 새 양말 꾸러미 같은, 기가 막히게 입에 넣기 좋은 것들을 찾아내 슬쩍 물고 눈치를 보는 모습들이 얼마나 웃기고 사랑스러운지.
가온이는 알면 알수록 덩치만 큰 아가다. 한 살 가까운 나이가 될 때까지 제대로 된 배움을 줄 엄마도, 주인도 없었던 녀석. 어디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을 좋아해 줘서,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봐줘서 얼마나 고맙고 기특한지. 그것만 있으면 우리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쌓아갈 수 있어. 가온이는 멋진 강아지가 될 거야.
*임시보호가 더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