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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 Sep 09. 2018

네가 반겨주지 않는 곳은 내 집이 아니어서

나이 든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


외출했다 돌아오면 애옹애옹, 잔소리하며 안아 줄 때까지 졸졸 쫓아다니는 너는
드라이기 소리에 후다닥, 화장대 위로 뛰어 올라와 머리를 들이미는 너는
그릉그릉, 손만 내밀어도 아니 눈만 마주쳐도 기분이 좋아지는 너는

아니, 그런 너 없이 나는




"페르시안 고양이 데려올까? 누가 준다는데."

무심한 듯 툭 던진 아빠의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그 날부터 너를 만나기 직전까지 인터넷 검색창에 뜬 복슬복슬한 페르시안 고양이들을 보며 얼마나 가슴앓이했는지 모른다. 너무 예전이라 선명하진 않지만 우리 가족이 어디론가 멀리 차를 타고 갔던 것을 기억한다. 다다른 곳에 기다리고 있던 큼직한 밴의 문이 열리고, 길쭉하고 커다란 회색의 덩어리가 날카롭게 우리를 노려봤다. 초등학생이던 나, 한 살이던 너. 우리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고 위압적이으며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집에 오는 내내 불만을 토해냈다. 예쁜 고양이를 만난다고 잔뜩 들떠있던 우리 가족 모두,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분명 '잘 한 짓일까, 우리가 쟤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생명체(당시 마찬가지로 한살이던 시츄 모모)까지- 너는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주 까칠했고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소파 밑, 식탁 밑, 침대 밑, 좁고 어두운 곳이라면 어디든 비집고 들어가 우엉-우엉- 서럽게도 엉엉 울었다.



외국으로 가게 되어 너를 포기한 예전 주인이 지어준 이름은 '링크'였다. 우리 가족은 만장일치로 그 이름이 싫었다. 그래서 '호동'이라는, 이전과 180도 다른 느낌의 푸근하고 구수한 이름을 지어 주었다. 모모와 호동이- 둘의 이름이 어우러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우리 가족을 소개할 때 여섯이라고, 엄마 아빠 언니 나 그리고 모모랑 호동이가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게 참 좋았다.



너에게도 우리에게도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시간은 빨리 흘러가 주었다. 너도 나도, 자라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때 우린 많이 어렸으니까. 도망가고 숨기만 하던 너는 손에 닿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는 곳에 웅크리고 앉아 사람 품에서 갖은 아양을 떠는 모모를 불만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호동아 왜 그래, 질투하는 거야? 쓰다듬어 주려고 하면 이딴 손길은 필요 없다는 듯 흠칫 물러서며 우에엥- 짜증을 냈다. 그래도 멀리 가지는 않았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낼 때도 넌 항상 거기에 있었다. 링크가 아닌 호동이로, 어느새 우리 가족 속 너의 존재는 남색 교복 재킷에 묻은 흰 털만큼이나 선명했다.



대학생이 된 언니가 우리 곁을 먼저 떠났고, 4년 후 나도 집을 떠났다.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왔고 연애를 하랴 과제를 하랴, 불타는 청춘을 만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 년 간 해외에 다녀왔고 그동안 단 한 번도 너와 모모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다고 할까 봐, 있다 한들 당장 달려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맞부딪힐 감정의 홍수가 두려워 나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돌아와 집 문을 열자마자 모모와 너의 안위를 확인하고 작지만 묵직한 두 몸뚱이를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세상에서 가장, 다행이었다.



직장인이 된 언니가 모모를 데려갔다. 몇 년 후 직장인이 된 내가 너를 데려왔다. 엄마도 아빠도 너무 바쁜 집에서, 익숙한 배경처럼 집에 스며든 네가 외로울 거란 것은 아마 내 핑계였을 것이다. 사실 처음 접하는 자취생의 삶이 외롭고 무서웠던 건 나였다. 낡은 단칸방에서 너는 훌륭한 동지가 되어 주었다. 스무 살이 된 이후 처음으로 너와 매일매일을 함께 보내게 된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네가 얼마나 애교가 많고, 사람을 좋아하고,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지. '우리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함께 늙어가는 동안 네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그때야 알았다.



그래서 점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사료를 먹이고 맛난 간식을 사줘도 나는 오랜 시간 너를 집에 혼자 두어야 하니까. 조금만 이상한 기색이 있어도 병원으로 뛰어가지만 10평 남짓한 자취방에 너를 가둬 놓아야 하니까. 그래서 수십수백 번 네게 입 맞추고 사랑해, 고마워, 를 속삭이면서도 혼자 살아 외롭다는 친구에게는 절대 고양이를 키우지 마라고 신신당부하게 되었다. 너를 그토록 사랑한다는 나조차 온전히 너를 책임질 수가 없어서, 나 하나만 바라보는 생명체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서.



불행히도 시간은 계속해서 빨리 흘렀다. 열여섯이 되지 못하고 모모는 멀리 떠났다. 뱃속에 조카를 둔 언니는 그 이후로도 한참이나 형부가 집을 비울 때면 나를 불렀다. 모모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집이 집 같지 않아서 혼자 못 있겠다고. 곧 열여덟 살이 되는 너는 여전히 건강하다. 하지만 나는 집에 돌아올 때마다 문을 바로 열지 않고 잠시 기다린다. 애옹애옹, 내 발소리를 들은 네가 현관에 뛰쳐나와 어디 갔다 이제 오냐고 잔소리를 할 때까지.


아이도 남편도 없는 집에 덩그러니 남아 너의 흔적을 오롯이 감싸 안아야 할 그 순간이 두려워,

나는 오늘도 두터운 철문 너머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새어 나올 때까지 오도카니- 귀를 기울인다.  

네가 반겨주지 않는 곳은 내 집이 아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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