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재 Sep 26. 2018

좋은 아빠이자 나쁜 남편인 그 사람,

사랑하며 혐오하는 나의 아버지

난 절대, 아빠 같은 사람 안 만날 거야!


괴물 흉내를 내는 아빠에게 붙잡힐 때면 꺄르륵 숨넘어가게 자지러지던 다섯 살, 수염이 까끌까끌하다고 투정 부리면서도 불쑥 내민 입술에 쪽 입을 맞추던 열한 살 소녀는 그렇게 자랐다. 절대, 절대로 아빠를 닮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수십 번 수백 번 다짐하며.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네 살 터울인 우리 언니도, 친척 동생도, 고등학교 동창도, 인터넷 속의 무수한 여자들도 그랬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한국 여성들의 이상형이 '아빠를 닮지 않은 사람'이라고 일반화하는 편이 빠를지도 모르겠다. 반면 한국 남자들이 원하는 여성상의 첫 번째 덕목이 포근함, 희생정신, 배려심과 같은 '엄마스러움'인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나는 이것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 사회 전체로 깊이 스며든, 참으로 보편적이면서도 가히 파괴적인, 아빠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혐오해야 하는 수많은 딸들을 길러낸, 한국식 가부장적 사회가 빚어낸 참혹한 비극이라 말하고 싶다. 




아빠는 내게 단 한 번도 나쁜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귀 아픈 잔소리를 하고 회초리가 부러질 때까지 내 뒤를 쫓아다녔던 건 전부 엄마였다. 아빠는 일 년에 한두 번쯤, 아주 큰 사건이 있을 때만 목소리를 잔뜩 깔고 무서운 표정으로 한두 마디를 내뱉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늘 재밌고 장난스러운 우리 아빠가 화를 내다니..! 나는 마법처럼 착한 아이로 되돌아갔다. 


아빠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다. 아니, 훌쩍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렇다. 아빠는 내가 차마 꿈꾸지 못할 학력을 가졌고, 나보다 젊은 시절 훨씬 멋진 일들을 해냈으며, 그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었다. 종교부터 정치, 사회, 문학, 자연 문제까지 아빠가 모르는 것은 없다. 언니도 나도 모르는 것, 궁금한 것이 생기면 아빠에게 먼저 달려간다. 항상 그렇듯 만족스러운 답을 얻기 위해. 


아빠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준 사람이다. 흔하지 않은 내 이름, 내 신체와 성격,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책 읽는 즐거움과 글 쓰는 희열감을 알게 해 준 사람. 글쟁이라고, 너도 결국은 나처럼 평생 글을 쓰며 살게 될 것이라고 핏줄에 단단히 새겨놓은 사람. 뻔뻔한 유머감각과 자신감을 대물림하고, 어떤 역경 앞에서도 그래 난 아빠 딸이야, 못해낼 리 없어- 생각만으로 용기를 얻게 해 주는 그런 사람. 


그러니 분명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 아주 많이. 동시에 나는 그를 가슴 벅차게 존경하고 인정한다. 그가 어느 딸들의 '아빠'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깨닫고, 이룩하고, 쌓아온 것들- 나라는 미미한 인간이 차마 뛰어넘지 못할 높은 벽이 될까 봐 나는 두렵다.


하지만 소녀가 여성으로 성장하며, 마침내 여자대 여자로서 엄마를 이해하게 되며 비극은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대하는 것과 달리 잔뜩 성나 있는 벽 너머 남자 목소리, 현관문을 거칠게 쾅 닫는 소리, 숨 죽여 흐느끼는 엄마의 울음소리, 그런 것들이 반복되며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같은 과 CC였지만 엄마의 커리어는 아빠와 결혼하는 순간 끝났다. 아이 둘을 키우며 유학하는 남편 뒷바라지를 하느라 쉴 새 없이 마트 캐셔로, 웨이트리스로, 청소부로 변신해야 했다. 남편이 사업을 한다고 일을 벌이면 가장 충직하고 현명한 비서가 되었고, 사업이 잘 안될 때는 붕어빵을 팔았으며, 마침내 망했을 때는 집으로 가게로 찾아오는 빚쟁이들과 대면해야 했다. 중학생이던 나는 선명히 기억한다. 당장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던 젊은 남자, 그 옆에 우리 엄마만큼이나 불안한 눈빛으로 바짝 붙어있던 젊은 여자. 기세 등등한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던 순간 흔들린 동공으로 말을 잃었다. 자식이 함께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조용히 엄마를 두고 이모네 집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 불쌍한 젊은 부부는, 어쩌면 나와 엄마와 같은 편일지도 모른다고. 나쁜 것은 아빠 한 명이라고. 


세월이 흘러 빚쟁이가 더 이상 찾아오지는 않지만 엄마의 남편은 단 한 번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 인정한 적도, 사과한 적도 없다. 못난 남편을 만나 당신이 고생이 많소, 고맙소, 사랑하오, 이런 당연한 말들조차 말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이기에 절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가 없다. 보다 못한 자식들이 한 마디 거들어도,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세상 일을 어떻게 알아, 그러면 큰 일 못한다. 얼굴색 하나 변함없이 자신을 변호할 뿐이다. 물론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사업이 망하는 것도 너무나 흔한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내린 결정이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아빠가 겸손하고 정직했더라면, 그리하여 우리가 아빠에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가족이니까 같이 이겨낼 거야-라고 다독일 수 있었더라면. 딸이 아버지를 혐오하는 비극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경상도 사람이라 감정 표현이 무디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아낀다, 미안하다, 고맙다-, 오직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때만 무뚝뚝한 남자가 되기 때문이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잔소리가 듣기 싫고-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는 어김없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필요 이상으로 표출한다. 엄마와 단 둘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자식들 앞에서도, 부부동반 동창회에서도, 직원들 앞에서도, 해외여행을 가서도, 항상. 그리하여 엄마는 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도 연민의 눈길을 받아야 하고, 남편분이 기분이 안 좋으신가 봐요?라는 말에 괜찮다며 웃음 짓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던 것이다. 


다른 부부들 모두 다정한데 손 한번 안 잡고 멀찌감치 앞서 휘적휘적 걸어가는 남편, 조금만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무안할 정도로 퉁명스레 말을 내뱉는 남편, 아내에게만 무뚝뚝하지 밖에서는 세상 유쾌하고 마음씨 좋은 양반인 남편, 환갑이 넘어서까지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마시지만 줄이라는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남편-. 그렇게 우리 아빠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남편이 되었다. 




나는 이제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이 한밤중 숨죽이고 싸우는 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아빠가 엄마를 무시하듯 내뱉는 말들을, 마음 약한 엄마가 새빨개진 눈으로 미소 짓으며 내 앞에서 꾸역꾸역 눈물을 참는 세상에서 가장 마음 아픈 그 얼굴을, 겪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제 다 컸다.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지 않을 것이며, 엄마 같이 당하며 살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의 인생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바보 같은 우리 엄마는 그렇게 당하고도 아빠를 여전히 사랑한다. 장미꽃 한 송이, 극장에서 보는 영화 한 편,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고맙소 미안하오 문자 하나. 그런 것에 엄마의 마음은 사르르 녹아 버린다. 수백 수천번 얼었다가도 그렇게 바보같이 녹아 버린다. 그리하여 한국 사회의 거대한 비극은 끝없이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어머니들이 한국의 아버지들을 너무나 쉽게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하기에. 남편을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품어 버리기에. 속이 썩어 문드러져 멍이 들도록 가슴을 두드리고 밤새 눈물을 훔쳐도, 아침이면 충실하고 순종적인 아내로 되돌아가기에. 


나는 엄마의 행복을 바란다. 그렇다고 내가 사랑하는 아빠가 잔인하게 버림받는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그들이 아직까지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아빠가 조금만 더 엄마에게 다정해졌으면, 유머스러워졌으면, 따뜻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이미 그가 두 딸들에게 평생동안 그러한 것처럼. 


도대체 좋은 아빠인 동시에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은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그리하여 그를 사랑해야할까, 아니면 미워해야할까? 오늘도 결코 답할 수 없는 딜레마에 머리를 감싼다. 나는 그저 나의 멋진 아빠를, 한 치의 혐오감 없이 온전히 사랑하고 싶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