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회사 생활은 처음이라
직원 수는 나까지 일곱 명. 제대로 된 간판이나 문패 하나 없는 자그마한 회사였다. 내가 막내긴 했지만 다른 직원들도 2-30대였고 대표도 젊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데 딱히 재미는 없는 예술 영화들이나, 생존을 목적으로 B급 성인물을 수입하기도 하는 곳이었다. 작은 회사인지라 내가 맡은 업무의 경계선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명함에 뚜렷이 박힌 소속은 ‘해외팀’이었다. 그래도 내 전공이 영어 쪽이었던 게 이런 식으로나마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연봉은 최저임금 수준에, 대표작이라 할만한 작품 하나 없는 신생 수입사였지만 영화산업에 대한 환상 때문인지 대한민국 취업난의 심각성 때문인지 들어가는 게 결코 만만하지는 않았다. 영어 면접은 기본이고, 미개봉 작의 예고편과 영문 시놉시스를 보고 마케팅 기획안까지 작성해야 했으니 말이다. 영화에 대해서도, 마케팅에 대해서도 일자무식이나 다름없지만 몇 날 며칠을 고민해 나름 그럴듯하게 포장된 결과물을 제출한 나는 그래도 내가 제법 잘 한 줄 알았다. 적어도 나의 면접 경쟁자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앞섰기에 최종 합격을 거머쥔 거라고 오만한 착각에 빠져 있었건만. 입사 첫날, 팀장님을 통해 알게 된 나의 합격 비결은 전혀 상상 외의 것이었다.
“너 부산영화제에서 일했었지? 그 팀 팀장님이랑 친하거든~ 전화해서 바로 물어봤지.
하나를 시키면 열을 알아서 한다고 하대? 그 한마디 듣고 너 뽑은 거야.”
세 다리 건너면 세상 사람 다 아는 사이라고들 하지만, 영화 업계는 정말 좁아도 너무 좁았다. 대학 졸업 전 잠시 스태프로 일했던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경험이 취업문을 여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어줄 줄이야. 딱히 그렇게 뭘 잘했던 것 같진 않은데 혹시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신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과찬의 평가를 내려 주신 당시 팀장님께 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만일 그때 큰 실수를 했거나 팀원들과 트러블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등줄기가 오싹했다. 이렇게 인생의 교훈을 또 하나 깨우친다. 인생은 인맥-, 이래서 어디서든 적을 만들지 마라고 하는 거구나. 별 의미 없어 보이던 얕은 거미줄 같은 관계가 나를 구원해 줄 동아줄이 될지, 숨통을 조일 올가미가 될 지의 여부는 오로지 나, 아무것도 모르던 과거의 나 자신에게 달린 것이었다.
일단 과거의 나에게 빠방한 조력을 받으며 무사히 입사까지는 했는데, 그 이후부터가 진짜 문제였다. 따끈따끈한 신입사원의 첫 사회생활은 역시 녹록지 않은 것이다. 대학에서는 시조새니 암모나이트니 화석 취급과 대선배 대접을 동시에 받았는데 사회에 나오니 레벨은 다시 0으로 리셋. 교수님께 배웠던 무역실무나 통번역 기술 같은 건 써먹을 데도 없고, 정작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머리 잘 굴리는 법과 눈치 백 단 스킬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터득해야 하는 건지 막막하다. 팍팍 꽂히는 돌직구로 친구들 사이 악명 높았던 나에게는 ‘살갑게 알아서 눈치껏’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척도였다.
사실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닌데, 문제는 눈치를 챘어도 납득 가는 이유 없이는 대체 왜 알아서 상대가 원하는 행동을 해줘야 하는지 동기 부여가 영 되질 않는 것이다. 가령 사무실에 울리는 주인 없는 전화는 왜 막내가 다 당겨 받아야 하는지, 각자 사용한 머그잔은 퇴근 전에 왜 막내가 다 설거지해야 하는지, 한 달에 한 번 있는 대청소 때 왜 막내가 가장 나서서 궂은일을 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그 모든 것들을 대놓고 나에게 “해라”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때로는 은근하고 때로는 직접적인 핀잔과 압박이 돌아왔을 뿐. 그냥 원래 막내가 그렇게 하는 게 맞다면, 차라리 세상의 법칙이 그러하다고 딱 정해줬으면 좋겠다. 대놓고 규칙으로 {막내가 모든 설거지를 한다}라고 정해 놓고 첫날 교육 때부터 알려주면 서로 눈치싸움할 일 없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렇다. 우선 “각자 먹은 컵은 본인이 설거지를 하는 게 맞지만~” 하는 식으로 본인의 도덕적 잣대에는 결함이 없다는 밑밥이 깔리고, “~그래도 짬이 있는데 과장이 그걸 해야겠니?” 와 같이 아리송한 전개 과정을 거쳐 뜬금포 결론에 다다른다. 나는 그게 참 싫었다.
이런 정신 상태니 당연한 결과였을까. 머지않아 나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기는커녕,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야 되는 눈치 없는 막내’의 포지션을 맡게 되었다. 상대가 원하는 대답이나 행동은 뻔히 보이고, 여기서 이렇게 반응하면 한숨 쉴 것도 아는데, 이상하게 곧이곧대로 하기는 싫었다. 면접 때부터 노랗게 물들이고 있던 머리가 내 반항심을 더욱 부추겼을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이래 저래 혼나는 일도 많았다. 그중 대다수는 내 잘못에서 기인된 정당하고 적당한 훈계였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새로 수입한 작품의 국내 개봉 여부에 대해 논의를 하는데, 아무리 예술 영화라지만 참 애매했다. 한국에서 먹히는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감독도 아니고, 대단한 작품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정말 지루했다. 첫 미팅 때 나온 “이 영화 어떻게들 봤어? 개봉시켜도 될까?”라는 질문에 나는 막내의 패기로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 아뇨, 전 너무 재미가 없었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폭격이 쏟아졌다. “영화는 꼭 재미있어야 되니? 그럼 재미없는데 대박 난 건 뭐야? 너 <000> 봤어? 그거 진짜 재미없고 지루한데 왜 그렇게 잘 됐을까? 니가 뭔데 그렇게 확고하게 말할 수 있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문장은 많았지만 그냥 입을 꾹 닫기로 하고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저분이 나보다 훨씬 잘 알고, 답은 애초에 정해져 있었다. 회의의 진짜 목적은 ‘개봉하냐 안 하냐’가 아닌, ‘어떻게 해야 잘 팔 것인가’ 였던 것이다. 그 영화는 물론 개봉했고, 물론 망했다. 그 이후로 나는 회의 시간에 주관적인 의견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열과 성의를 다했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출근을 했는데, 공기가 이상했다. 실장님이 넌지시 빨리 메일을 확인해 보란다. 어제의 내가 또 무슨 짓을? 손을 덜덜 떨며 메일함을 켜자 어제 퇴근 전 보낸 메일에 회신한 대표님 메일이 보인다. 클릭하자 보이는 건 짧고 굵은 한 마디.
너 일 이딴 식으로 할래?
아직 무슨 일인지 파악도 안 됐지만 일단 왜 사무실 공기가 싸늘했는지는 알겠다. 받는 사람은 나지만 참조에 모든 직원이 들어가 있었다. 공개 처형이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한 짓은 계약서와 돈이 관련된, 대표님이 확인하지 못하고 거래처로 넘어갔더라면 아찔했을 큰 잘못이었다. 그렇지만 그 일과 연관도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런 방식으로 알려야만 했을까. 그때 느꼈던 수치심과 모멸감은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압도적인 감정이었다.
그런 과정을 수도 없이 거치며 나는 어느새 뻔하고 듣기 편한 말만 하고, 내가 책임질 일은 백 번도 더 확인하며, 모든 것을 적당히 잘 해내는 검은 머리의 훌륭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