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란, 아무래도 저주보단 축복이겠지만

#2 언니의 신혼집에 입성하다

by 신재

형제자매, 그중에서도 언니의 존재는 아무래도 저주보다는 축복에 가까운 듯하다.


어릴 때는 어두운 밤 화장실을 함께 가주고, 신화나 핑클 등 신문물을 전파하더니 머리가 다 큰 후에는 무려 신혼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기까지 하니 말이다. 일단 서울로 취업은 했지만 덜컥 자취방을 계약하는 건 아직 이르다는 가족들의 의견이었다. 당시 결혼 1년 차이던 언니의 신혼집은 경기도 안양의 평촌에 위치하고 있었다. 회사가 위치한 경복궁역까지는 지하철 한 번 갈아타고 약 한 시간 거리. 뭐, 썩 나쁘지 않은 첫출발이었다.


언니랑 같이 사는 게 처음인 것도 아니니까, 괜찮겠지?




오산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제대로 같이 살아 본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우리 둘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도. 네 살 많은 언니는 그야말로 믿음직스럽고 기특한, 바른 큰딸의 표본 같은 캐릭터이다. 반면 나는 제멋대로에 고집 센, 천방지축 막내딸의 표본이고 말이다.


언니는 엄마를 닮아 술 한 모금만 마셔도 빨개지고 나는 아빠를 닮아 술 한 말을 마셔도 끄떡없다. 우리의 유일한 공통점은 학창 시절 각종 글짓기 상을 휩쓸어왔고 학급 반장이나 동아리 회장 따위를 열심히 했다는 것인데, 욕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언니가 ‘만인의 연인’, ‘천연기념물’ 같은 아름다운 별칭으로 불리며 반 친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동안 나의 이미지는 요즘식 표현으로 ‘걸 크러시‘와 ‘무심한 막말 빌런’의 중간쯤 자리 잡고 있었다는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가 존재했다.


그놈의 술이 가장 문제였다. 엄마와 아빠 사이 존속되던 고질적인 알코올 분쟁은 언니와 나 사이로 고스란히 대물림되었다. 이제 취업도 했겠다, 서울도 코 앞이겠다,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밤늦게까지 부어라 마셔라 실컷 놀고 싶건만 버스 막차 시간을 두고 자꾸 언니는 협박을 했다.


(언니) 너, 막차 타고 안 들어오면 엄마한테 말할 거야

(나) 아 이제 막 2차 시작했다고 ㅠㅠ 택시 타면 되잖아

(언니) 그래? 알겠어 그럼 가족 단톡 방에도 그렇게 말할게! ㅎㅎ


(가족 톡-언니) 엄마, 있잖아~


(나) 아 알았다고!! 지금 일어난다고!!!!


(가족 톡-엄마) 응?

(가족 톡-언니) ㅎㅎ 아니야~! 우리 잘 있다고.


술은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버스는 무조건 끊기기 전에. 더없이 치사하고 유치 찬란한 방식으로, 언니는 하나뿐인 동생의 바른생활을 무사히 지켜냈다. 이래서 엄마가 그렇게 큰 딸 큰 딸 하는구나,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언니가 야속하다. 아니, 자매끼리 나쁜 짓도 같이 하고 서로의 잘못을 숨겨줘 가며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거, 그게 바로 자매애 아닌가? 이 집엔 사랑이 없어, 사랑이. 아무리 구시렁대 봐도 별 수 있나.


엄격한 기숙사 사감처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언니 덕에 꿈꾸던 흥청망청 유흥 라이프는 잠정 보류되었고, 대신 형부와 옛날 통닭에 맥주 한 캔 두 캔 쌓아가며 야근하는 언니가 돌아오기를 나란히 기다리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나의 첫 회사는 다행히 사기이거나 이상한 곳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언니와 형부의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방해하기 싫어서, 왕복 두 시간 출퇴근 시간이 아까워서, 처음으로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서, 내 취향에 맞는 집을 꾸미고 싶어서, 함양에 있는 고양이 호동이를 데려오고 싶어서, 잔소리 걱정 없이 실컷 놀고 싶어서, 내 지인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어서... 평촌 언니 집을 떠나 나만의 자취방으로 이사 가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진정한 서울 입성, 그리고 나 홀로 자취 라이프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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