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면서 가장 서러운 순간이란

#6 화장실 바닥에 누워 119를 부를 때

by 신재

1인 가구의 가장 큰 단점은 아플 때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그토록 서럽고 고된 순간은 찾기 어렵다. 코피 한 번 흘린 적 없고, 깁스 한 번 해 본 적 없어 내심 보호본능을 유발하는 청순가련 친구들이 부러웠을 정도로 튼튼한 편인 나는 홀로 살아남기에 제법 적합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다만 소화 능력이 좀 떨어져 배탈과 설사를 그림자처럼 달고 다녔는데, 3n 년 차 '장 트라블타'의 삶을 살아오다 보니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가장 빠르게 화장실을 찾아내며 가방과 외투 주머니에 항시 휴지와 지사제가 구비되어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사실 이런 경우 혼자 산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다. 문을 닫아도 물을 틀어도 가려지지 않는, 웅장하면서도 내밀한 4중주를 오직 나 홀로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화장실 문 너머에 있다면 혹여 폭격음이 터져 나올까 불안에 떨며 조심조심 배를 쥐어짜고, 힘겹게 일을 끝낸 뒤에는 이미 내 코가 적응해버린 진한 체취를 없애기 위해 샴푸까지 동원해가며 흔적을 감추려 애써야 한다. 여기에 혹여 변기가 막히기라도 하면, 망할 세상아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 지난날들이 눈 앞에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 과정과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껏 배변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건, 사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누리지 못하는 사치스러운 행복이다.




그렇게 1인 가구의 화장실 생태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새벽, 예기치 못한 복통에 눈을 번쩍 떴다. 음, 이 시간에 찾아오다니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 평소와 다름없는 그 녀석이겠거니, 비몽사몽 몸을 이끌어 변기 위에 앉힌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다. 한참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인데 쥐어짜듯 배는 점점 더 아파 오고, 급기야 식은땀이 비질비질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져 배를 움켜쥔 채 화장실 바닥에 쓰러지듯 눕는다. 아, 바닥 청소 언제 했더라.. 평소라면 몸서리치게 더러웠겠지만 지금은 볼에 닿는 타일의 감촉이 땡볕 아래 들이키는 얼음물처럼 그저 달고 시원하다.


한 시간쯤 그렇게 화장실 바닥에 얼굴을 대고 누워 있으려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바닥에 함께 내팽개쳐진 기분이었다. 아프니까 더럽게 서럽네.. 지금 엄마가 날 보면 뭐라고 할까.. 그 와중에도 머리를 둥둥 떠다니던 여러 생각들이 엄청난 통증과 함께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단 한 가지로 통일된 순간, 간신히 휴대폰을 들어 119를 눌렀다. 새벽 네다섯 시쯤 되었을까. 난생처음 불러 본 119는 정말 빠르고 친절했다. 신고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출동 접수 문자가 날아왔는데, 이상하게 그 문자를 보는 순간 머리뿐 아니라 그토록 말을 듣지 않던 대장까지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구급차.. 비싸다던데...'


정말 모든 것은 정신력에 달려 있는지, 아니면 때맞춰 잦아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통증은 그럭저럭 참을만한 수준으로 바뀌었고 몇 시간만 기다려서 내 발로 병원에 가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허겁지겁 다시 119를 눌렀다.


“아, 저 조금 전에 전화했었는데요, 갑자기 괜찮아져서요....”


잠시 후,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던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결과물이 빛을 보기는 하는데... 이상하다. 그것의 특성상 띨 수 없는, 아니 띠어서는 안 되는 색을 띠고 있다. 검붉은 것도 새빨간 것도 아닌, 청순한 딸기 우윳빛인 것이다. 아니 이게 이럴 수 있나..? 흡사 흩날리는 벚꽃 이파리들을 떠올리게 하는 변기 안 풍경을 마주한 나는 깊은 당혹감에 빠져 든다. 웃음기 싹 빼고, 내가 창조해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기념 혹은 증거로 사진이라도 찍어야 할까..?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다 얼마 남지 않은 존엄성을 지키고자 변기 레버를 내린다.


미학적으로라면 모를까 의학적으로는 당연히 좋지 않은 증상이었다. 새벽에 내가 하도 유난을 떤 탓에 헐레벌떡 첫 차를 타고 달려온 남자친구와 함께 찾은 동네 병원. '벚꽃 변'에 대한 휘황찬란한 묘사를 들은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더 큰 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겠다는 섬찟한 진단을 내린다. 그렇게 향한 대학 병원, 나는 이런저런 큰 검사들을 하고 무려 일주일 간 입원을 하게 되었다.


평촌에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언니는 내 연하 남자친구와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었다.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대놓고 웃기도, 울기도 애매한 분위기였다. 남친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만 부모님보다는 나를 덜 걱정하는, 그 적절한 중간 지점에 든든히 버티고 있는 언니. 자취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나는 큰일이 있을 때마다 언니에게 가장 먼저 말하고(혹은 들키고) 어느 정도 조정과 타협을 거친 후 부모님께 알리는 편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맛보는 병원 생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일단 정당한 명분으로 회사를 일주일 씩이나 쉴 수 있었고, 주변에서 걱정해주는 목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고, 워낙 먹성이 좋은 터라 때맞춰 나오는 병원 밥도 정말 맛있었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고 정체 모를 바이러스로 인해 과민한 대장님께서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진단 결과를 듣자마자 며칠 전 다녀온 미국 출장, 길거리 푸드 트럭에서 허겁지겁 먹었던 햄버거가 스쳐 지나간다. 이거 산재 처리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아니, 나 혼자 사 먹은 거니까 상관없나. 결국 실비 처리를 하고도 병원비가 제법 나오긴 했지만 덕분에 119도 불러 보고, 잠시나마 입원 환자의 심정도 느껴 보고, 길거리 음식에 대한 경각심도 가지게 되었으니 남는 게 더 많은 경험이었다고 합리화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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