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가면 우리는 평지를 걸을 수 있을 거라고.

#10 가파른 언덕길의 고된 낭만

by 신재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유난히 이사를 자주 다녔다.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때로는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가기도 했지만 대체로 이사는 내게 그리 싫은 일은 아니었다. 침대 밑에서 잃어버린 이어폰을 발견한다든지, 옷장 위에 올려 두고 잊은 편지 상자와 마주친다든지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즐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거들떠도 보지 않던 서랍 속 내용물을 바닥에 엎어놓고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넌 나랑 함께 가자, 아쉽지만 넌 여기까지야- 선고를 내리는 일도 보람찼다.


새로운 집에 도착해서는 이제까지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 모든 살림들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게 좋았다. 가령 이어폰은 잃어버리지 않게 항상 첫째 서랍에 보관하고, 편지 상자는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책상 아래로 자리를 옮긴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실질적 주인인 엄마나 방을 같이 쓰는 언니에게 밀려 나의 의견은 높은 확률로 묵살되었다. 그러니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을 가진다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이었겠는가.


두 번째 이사 역시 그랬다.




나의 다음 자취방은 청파동, 그러니까 택시 기사님들로부터 ‘서부역’이라 불리는 서울역 뒤 편의 언덕배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과 함께 이 집을 처음 보러 가는 길, 끝나지 않는 언덕과 계단의 향연에 몇 번을 멈춰 숨을 골라야 했지만 보자마자 계약하겠다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700에 35, 저렴한 월세에 이전 집보다 두 배 이상 넓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탁기가 집 안에 있기도 했다. 그것도 조그마한 다용도실에 따로 분리되어서! 한 가지 아쉬웠던 건 1층이라는 점인데, 창문을 열면 바로 밖이 아니라 폭 1미터쯤의 널찍한 수납공간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덜 위험할 것 같았다. 실제로도 이 집에서 사는 동안 밖에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든가, 누군가 안을 들여본다던가 하는 불쾌한 상황과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냉장고와 서랍장, 신발장 등 기본적인 옵션이 갖춰져 있었는데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가로 폭이 이 미터쯤 되는 좌식 테이블이었다. 좁고 긴 그 테이블에는 여덟 명쯤은 거뜬히 둘러앉을 수 있었다. 이전 집에서는 아무리 많아도 두 명 이상 초대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열 명까지도 가능해진 것이다. 하기야 엄청난 언덕 때문에 두 번 이상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친구도 없었지만 말이다. 매일 밤 사다리를 오르는 데 지쳤던 나는 드디어 무난한 일 층 침대를 샀다. 소셜 커머스에서 십만 원도 안 하는 저렴한 프레임을 골랐는데, 매트리스는 좋은 걸 해야 된다며 돈을 턱 보태주신 엄마 덕에 가장 비싼 걸로 살 수 있었다. 그 침대 세트는 내 마지막 자취방까지 기나긴 여정을 함께했다. 프레임은 다 망가져 서랍도 쓸 수 없게 되었지만 매트리스만큼은 여전히 건재했다. 역시 엄마 말을 들어야 한다.


이 집은 내게 고달프고도 아름다운 청춘의 상징이었다. 한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등산을 마치고 뒤를 돌아보면, N서울타워를 필두로 한 아름다운 야경이 훤히 내려다 보였기 때문이다. 높은 언덕과 좁은 골목 때문에 차를 가지고 오기도 힘들어 가족들은 질색했지만 나는 이 집을 사랑했다. 정확히는 이 집이 지닌 감성을 사랑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힘들었다. 한참 표준 미달인 근육량 덕에 매일 출퇴근 때마다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었지만 ‘공짜로 이렇게 운동하고 얼마나 좋아’, ‘젊을 때 아니면 언제 이런 집 살아보겠어’ 식의 초긍정 마인드 세팅으로 어떻게든 극복해냈다. 흡사 가시덤불과 늪지대를 지나야 나오는 아름다운 성처럼 우리 집에 가는 길도 험난했지만 즐거운 서울 라이프를 즐기겠다는 나의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주말이면 높은 하이힐을 신고 열심히 언덕을 오르내렸고 밤늦게 올 때는 택시를 타곤 했는데, 열 대 중 다섯 대는 못 간다며 언덕 밑에 나를 내팽개쳤다. 그나마 집 앞까지 가는 다섯 대 중 네 대의 기사님들은 오만상을 찌푸린 채 투덜거렸고 나는 늘 죄인처럼 조아리며 눈치를 보아야 했다. 나중에는 택시에 타서 ‘청파동이요’라고 목적지를 말하기가 두려워질 정도였다.




그 언덕은 나에게만 가혹했던 것은 아닌가 보다. 종종 나와 비슷한 동지들을 마주치기도, 아니 발견하기도 했으니까.


늦은 저녁 집 가는 길, 도로 한가운데 시커먼 것이 누워 있어 가방 속 후추 스프레이를 꽉 손에 쥐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용히 다가가 보면 드르렁, 제 집 안방처럼 코를 고는 어느 집의 가장이었다. 바둑판처럼 골목이 하도 많아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매번 집 가는 코스가 조금씩 바뀌었는데 그중 최단 시간, 최고난도의 선택지는 끊김 없이 한 방에 이어진 수 백 개의 계단이었다.


새벽 네 다섯 시쯤 되었을까, 희뿌옇게 세상이 밝아오는 시간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데 끄트머리에서 예상치 못한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빳빳한 새 양복에 갇혀 각진 서류가방을 꼭 끌어안고 콘크리트 계단 위 곤히 잠든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 어느 집안의 귀한 아들. 목 끝까지 단정히 채운 넥타이가 혹 숨통을 조이는 건 아닌가 싶어 잠시 내려다보니 다행히 배가 규칙적으로 오르내린다. 너도 저렴한 자취방을 찾다, 상사의 술 한 잔을 거절 못하다 여기 이 차가운 돌 침대까지 다다랐구나. 사냥꾼에게 쫓기는 한 마리 토끼처럼 산 중턱까지 내몰렸구나. 잠시 동정심과 동지애가 뒤섞인 묵념을 한다. 몸을 흔들어 깨워 줄까, 하다 어쩐지 그의 단잠을 방해하는 기분이 들어 그대로 몸을 넘어 계단을 마저 오른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얼마 후 부스스 그가 잠에서 깼을 때, 올라가야 하는 계단이 몇 개 남지 않아 다행이라고. 고된 길은 거의 끝났으니, 조금만 더 가면 우리는 평지를 걸을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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