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또 볼 일은 없겠지만, 영영 잘 지냈으면 좋겠어
안타깝게도 홍수 대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심심찮게 천장에서는 물이 떨어졌는데, 사실 첫 번째가 너무 엄청났기에 그 이후로는 그저 가소롭게 느껴졌다. 그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었던 건 날씨가 추운 덕에 곰팡이가 번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물이 그렇게 많이 터졌는데도 얼룩 하나 없이 멀쩡해 보이던 천장은, 날씨가 풀리자 슬슬 시동을 걸더니 본격적인 여름이 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활짝 곰팡이 꽃을 피워낸 것이다. 그들은 내 허전한 천장을 흐드러지게 수놓기 시작했는데 기세가 엄청나서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의 모양새가 다를 정도였다.
내가 아무리 무던함의 대명사라 해도 검은색으로 뒤덮인 천장을 견딜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천장 곰팡이 제거 작업을 하더라도 그때뿐이지, 이 낡은 빌라에서는 또다시 물이 새고야 말 것이 뻔했다. 계약 기간은 2년,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 하지만 찾아보니 주인의 관리 미숙으로 문제가 생긴 것이므로 합당한 계약 파기가 가능했고 심지어 복비 및 이사비용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후, 이번 건은 빨래 비용을 받아내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곰팡이 때문에 집을 빼야겠다고 하자 주인 할아버지는 허겁지겁 달려와 방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천장을 보고선 차마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던지, 1층의 비어있는 방을 보여주며 이 쪽으로 옮기는 건 어떤지 제안하는 것이다. 2층에서 1층으로 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심지어 그 방은 폭이 더 좁아서 벙커침대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다. 여기서 약해지면 안 돼, 굳게 마음을 다잡은 나는 무조건 이사를 나갈 것이라고 단호히 주장했다. 더불어 밑져야 본전이니 이사비용까지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사실 그래 봐야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그때 나는 정말 한 푼이 아쉬웠기 때문에 물불 가릴 것이 없었다. 그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난처함과 더불어 ‘이 친구 참 피곤하군’ 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 고민 끝에 10만 원 정도를 말씀하셨고 나는 마지못해 수긍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퇴근 후 일주일 내내 나의 두 번째 집을 찾아 떠나는 고된 여정이 이어졌다. 성북구 쪽에 살아 봤으니 다른 동네도 궁금했고, 직장에서 너무 멀지만 않으면 어디든 괜찮았다. 쫓겨나듯 나오는 거지만 그래도 여기보다는 더 나은 집에 가고 싶었다. 기존 내가 가지고 있던 집 고르는 조건에 새로운 항목들이 더해졌다. 살아보니 꼭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것들이다.
첫째, 세탁기가 집 안에 있을 것
둘째, 천장에서 물이 새거나 곰팡이가 피지 말아야 할 것
셋째, 호동이가 우다다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나올 것
급하게 구하느라 많이 둘러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제법 빠른 시일 내에 예산에도 맞고 그럭저럭 마음에도 드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 계약은 더 쉬웠다. 첫 번째만 해도 집을 볼 때나 계약을 할 때 형부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 번엔 나 혼자서 등본도 떼보고 야무지게 부동산 복비도 깎은 것이다. 혼자 지하철도 못 타고, 길도 못 물어보고, 집안에서도 어수룩하기로 유명해서 부모님 걱정을 잔뜩 시키던 내가 부동산 계약을 하다니 아-, 다 컸다 다 컸어. 이런 게 바로 어른의 맛일까. 우쭐하고도 뿌듯한 기분을 만끽한다.
이사 날은 빠르게 정해졌다. 새 집에서는 새 가구로 새롭게 시작해야지. 벙커침대는 샀던 가격 그대로 다시 중고로 처분했다. 하루빨리 새 집으로 가고 싶으면서도 첫 집이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아쉬운 마음도 컸는데, 마지막 날까지 이 집은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곰팡이도 만개하고 이삿짐 때문에 어수선해서인지 손가락 세 개를 합친 것만 한 바퀴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바퀴는 정말로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타닥타닥… 섬찟한 기운에 잠을 깼는데 푸르스름한 어둠 속, 호동이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내 머리 위 쪽 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아아… 하루만.. 하루만 더 버티면 돼… 나는 아무것도 못 본거야. 너도 못 본거야 이 자식아. 호동이를 끌어안고 머리 위로 이불을 푹 덮어 버린다.
침대도 없고 옷장도 없으니 이사 트럭을 부를 필요도 없었다. 조그마한 라보 트럭을 부를까 하다 그것마저도 사치인 듯 해 다마스를 불렀다. 헤어졌다 만났다를 여태 반복하고 있던 연하 남자친구가 팔을 걷고 짐을 날랐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솔직해지자면, 홀로 짐 나르고 청소하고 정리하는 그 모든 과정이 두려워서 진짜 이별을 그때까지 유보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그런 생각이 아주 아주 조금도 없었다면 거짓말 이리라.
짐을 차에 다 싣고 주인 할아버지에게 방 열쇠를 건넸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진심이었다. 이 차가운 도시에서 나를 따뜻하게 품어준 첫 번째 보금자리. 그야말로 우당탕탕 자취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시작으로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재미도 보람도 있을 테니까.
“고생 많았어요. 잘 살아요.”
진심이었으리라. 그 말을 듣자 저절로 눈물이 핑 돌았으니까.
완전한 타인에게 듣는 ‘잘 살라’는 덕담이 왜 그리 애틋한지 모르겠다. 잘 살라는 말에는 사실 생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어서일까. 잘 먹고, 잘 자고, 잘 벌고, 잘 쓰고… ‘잘’이라는 흔해 빠진 부사도 그렇다. 국어사전에 명시된 의미가 열 개도 훌쩍 넘어가는데, 죄다 좋은 말들만 가득하다. 옳고 바르게, 좋고 훌륭하게, 아주 만족스럽게, 아무 탈 없이 편하고 순조롭게, 충분하고 넉넉하게… 그러니까 알고 보면 잘 살라는 세 글자에는 어마어마한 축복과 기원이 들어 있는 셈이고, 얕은 마음이나마 상대에 대한 호의 없이는 내뱉기 어려운 말이다. 우리가 또 볼 일은 아마 없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영영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주인과 부동산 사장님들로부터 ‘잘 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찡한 마음에 코를 훌쩍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