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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Nov 12. 2020

시소

비가 온 뒤 가을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원래 가을은 짧다지만 아직 단풍도 덜 떨어졌는데.. 속으로 생각하며 옷장에서 두꺼운점퍼를 집어들었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헬스장을 가려 밖으로 나오니 왠일인지 가을이 다시 돌아왔다. 미세먼지 하나없는 푸른하늘과 선선한 가을바람이 따신햇살과 함께 내리쬤다.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책상에 앉아 영어공부를 하려했으나 산책을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있던 엄마도 마침 산책을 가려던 참이라 차를 끌고 함께 집근처의 봉선사로 향했다. 날씨가 좋은 탓인지 알록달록한 단풍들이 많아서인지 평일 낮시간에도 주차장이 붐볐다. 작년여름 엄마와 함께 연꽃을 보러 온 뒤론 1년반만에 찾는 곳이였다. 종교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절과 자연은 우릴 반갑게 반겨주었다. 몇일 전 비가와서 그런지 낙엽들이 바닥에 많이 깔려있었다. 높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바닥에 깔려져버렸지만 색은 여전히 이쁜 단풍들을 보니 대견하고 멋있었다. 언젠간 색도 바래지고 바스락거리며 다시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사람도 위치나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자기자신이 이쁜색을 띄면 어느 곳에서나 멋있을거란 생각을 했다. 절 가운데에는 자그마한 호수가 있었는데 팔뚝만한 물고기 2마리가 유유히 수영을 하고 있었다. 거북이들도 있다고했는데 오늘은 보진 못했다. 오후에 서울에서 약속이 있었으므로 간단히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속장소였던 상수역에 일찍 도착하여 역 화장실 앞의 의자에 앉아 영어공부를 하는데 한 학생이 앞에 앉았다. 큰 백팩을 메고 7부정도 되는 검정슬랙스와 줄무늬 양말을 신은 그 학생은 백팩에서 주섬주섬 단팥빵1개를 꺼냈다. 화장실과 역의 출구의 거리가 멀지않아 바깥의 찬바람이 새어 들어왔는데 양말과 바지 밑단사이의 공백이 공허해보였다. 주변 공기의 온도가 익숙한 듯한 표정의 그 남자는 단팥빵을 몇입 베어물곤 자리를 떴다. 요즈음에도 한주에 3번이상은 단팥빵을 먹는 나였기에 왠지모를 친근감을 느꼈다. 부스러기가 없고 깔끔한 포만감이 드는 단팥빵의 감성을 좋아하는 비슷한 부류의 사람인 듯 싶었다. 친구를 만나 홍대근처의 막창집으로 향했다. 좋아하지만 비전이 크지 않은 일과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편한 일, 돈을 많이 벌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일과 스트레스의 비중이 작지만 수입은 시원찮은 일중에 어떤 삶을 사는 게 행복한 삶인지에 대해 논의를 하였는데 결론은 답이 없다는 걸로 결론지었다. 삶이라는 주체에 대해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이미 암묵적으로 또 전제적으로 인지하고 있었기에 대화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하기 보다는 그 대화의 흐름을 읽는데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한가지 직업에 대해 10년간 초점을 맞추었고 다트의 방향과는 관계없이 좋은 게임을 만들어 냈었다. 더이상 다트에 흥미를 잃어버린 난 게임이 끝난 후에 다트를 어디에 정리 해 놓을 지 몰랐고 가만히 손에 들고선 주위만 두리번거렸다. 수입과 주변의 환경들에 속해있는 나를 표적으로 두고 가만히 지켜보았을 때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으나 그 행복함으로 인한 편함에 안주하긴 싫었다. 하루하루의 삶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그 편함에 안주하고 그 상황이 주체가 되어 맞춰져가려는 내 자신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더 컸고, 이렇게 깨닫고서도 정작 행동으로 바로 실천하지 못하는 내 자아에게 또 다른 압박을 받았다. 내가 앉아있고 맞은편에서 나를 보는 다른 나와 그 둘을 보고 있는 또 다른 나, 그 모든 걸 지켜 보고있는 현실의 나 사이의 간격과 시선에 대해 괴리감을 느끼며 가게를 나왔다. 홍대입구역으로 가는 골목에 한 와플가게에 들러 가장 기본메뉴인 사과잼와플을 샀다. 누군가 “simple is best”라 하지 않았던가. 행복은 어느순간이던 가까이서 충분히 찾을 수 있고 그 행복의 무게는 가장 심플하고 가볍다고 생각했다. 이럴거면 2시간동안 진지하게 얘기할 게 뭐 있었나 싶다. 가장 표면적인게 행복인걸.


평범하고 특별한 하루가 지나갔다. 내일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의 무게가 좀 더 가벼우면 좋겠다. 농도는 더 짙었으면 좋겠고. 누군가 나에 대해 물어본다면 시소라고 말하고 싶다. 한쪽은 자존감이 무거워져 안정적으로 내려앉고, 맞은편의 앉은 또 다른 난 가벼워져 높이 올라 넓은 시야를 볼 수 있는 시소같은 인생을 살고싶다고. 놀이터의 많은 아이들 사이 난 오늘도 흙을 만지작거린다. 보물이 나오길 바라며 흙을 파기도하고, 높게 쌓아 멋진 모래성을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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