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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Nov 12. 2020

타투

첫 타투를 몸에 새긴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15살의 어린 나이에(그 당시엔 어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타투를 하게 된 건 단순히 누나와의 흔한 대화 속 작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3살 연상인 누나는 귀 옆에 한자로 타투를 할 거라고 했다. 주변에 타투를 한 친구들이 몇 있긴 했지만 타투라기보단 문신이라는 억양이 어울릴만한 느낌들이라 딱히 끌리진 않았었다. 같이 가자는 누나의 말에 구경이나 가볼까 하는 마음 정도였지만 이내 내 머릿속엔 멋진 문구들의 리스트를 간추리고 있었다. 딱히 생각나는 도안도 없었고, 이왕이면 보이는 곳에 영어로 레터링을 새기고 싶었다. 아직까지도 국내에선 타투 자체가 불법이고 특히 미성년자에게는 더욱이 조심스러운데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고 몰래 샵으로 갔다. 사실 말하고 갔어도 부모님이 나름 개방적이신 편이라 아마 별말 안 하셨을 듯싶지만. 예약을 하고 의정부시내 한 복판의 한 건물로 올라갔다. 정확한 상호명은 기억나질 않지만 새까만 시트지를 붙인 듯한 창문에 tattoo라는 글자가 선명히 적혀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샵은 마치 관계자 외 출입금지구역을 몰래 들어온 듯한 어색함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10평 남짓한 크기의 내부는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빛 한 줌 안 들어오는 암흑 그 자체였고 작업용 검은 침대와 책상, 검은 의자 몇 개가 전부였다. 책상 위 컴퓨터의 모니터 밝기와 침대 근처의 스탠드 등 몇 개가 방 안을 어렴풋하게 비추어주었다. 내가 생각해간 문구는 “군계일학”이었는데 한창 모델을 시작해보려는 시기였기에 나와 잘 맞는 멋진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어로 번역하니 “Stands out in the crowd”가 되었다.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길이에 글자체의 흩날림 들도 적당히 부드럽고 날카로워 맘에 들었다. 시작은 누나가 먼저 했다. 적당한 볼륨의 알 수 없는 노래를 틀고 타투이스트가 누나의 목부분에 기계를 갖다 댔다, 기계의 진동이 바늘을 움직이며 내는 소리는 섬뜩했다. 군대 훈련소에서 첫 사격훈련을 하였을 때 들었던 총소리와 비슷한 공포감이었다. 고통을 잘 참는 누나는 별거 아니란 듯한 표정으로 금세 타투를 받고선 일어났다. 어디에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오른쪽 팔목에 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어릴 적부터 주사도 잘 맞고, 귀도 집에서 뚫곤 했던 나였기에 얼마나 아플까란 생각보다 무슨 느낌 일까 하는 생각이 더 컸다. 소리는 굉장히 요란했지만 내 예상대로 고통은 충분히 참을만했다. 수백 번의 바늘이 내 팔목을 뚫고 글자를 새겼다. 바셀린 잘 바르고 물 닿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예상대로 부모님께선 별 말을 하진 않으셨고, 그 당시 난 롯데리아에서 주방 알바를 하고 있을 때라 최대한 조심하려고 비닐랩을 팔목에 두르고 출근하곤 했었다. 그 후로 한동안 타투를 안 하다 18살에 한번, 성인이 된 후 1번 하고선 최근 오랜만에 타투를 받았다.


며칠 전 잠실에서 하는 “장 미셀 바스키아”의 전시회를 보러 갔었다. 예전부터 좋아하는 아티스트였는데 사진이 아닌 실제의 작품을 본 건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작품에는 바스키아의 시그니처인 노란 왕관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작품들을 보면서 그 심벌을 조그맣게 손가락에 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를 나와 아는 타투이스트 형에게 연락하여 날짜를 잡곤 며칠 뒤 작업실이 있는 신림으로 향했다. 신림역에서 버스로 2 정거장 거리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작업실 겸 집은 자욱한 나그참파 향으로 가득했다. 직접 그린 그림들이 바닥 곳곳에 무심하게 앉아있고 돌멩이와 나무껍질 등의 자연 그대로를 오마주 한듯한 오브제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시시콜콜한 안부를 묻다 도안을 프린팅하였다. 왕관은 우리몸의 가장 높은위치에서 사용하니 왕관타투도 손가락의 가장 높은위치에 새기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오른손 중지에 그리기로 하였다. 간만에 받는 타투였기에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타투기계의 바늘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머지않아 이내 편한 상태가 되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고통이 점점 더 무뎌진건지, 그 형이 아프지 않게 작업을 잘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고통이라고 부를만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왜 하나도 안아프지? 라고 말하니 형은 너가 이상한 놈이라고 하였다. 타투는 완성적이었다. 귀여운 샛노란색으로 가득 찬 왕관그림 하나로 위트가 생기고 어떤 예술분야의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만약 예술업종에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파티가 있다면 당연스레 초대권을 받은 느낌이랄까하는 프라이빗함도 느낄 수 있었다. 형은 손가락 자체가 가장 많이 쓰는 부위이기도 하고 물에 안 닿고 관리하기도 어려운 부위라 색이 금새 빠지고 자칫하면 쉽게 번져 지저분하게 된다하였다. 난 색이 빠져도 얼마나 빠지고 설령 번지고 깔끔하게 못 된다한들 그 마저도 느낌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바세린을 듬뿍 바르고 우린 스케이트보더들이 나오는 20여분짜리 슈프림광고를 여러편 돌려보며 맥주와 와인을 섞어 마셨다.


바세린을 챙겨다니면서 생각날 때 마다 발라주었다. 엄청 꼼꼼히 관리를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소홀히 한 것도 아닌 그저 적당한 온도로 상처를 관리했다. 하루이틀 지나니 타투 위로 딱지가 지기 시작했다. 틈틈이 바세린으로 관리를 하다보니 딱지가 슬슬 떨어져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데 가뭄 든 바닥같이 갈라진 왕관 틈 사이로 보이던 색은 노란색이 아니라 살색이었다. 자세히 보니 살색 군데군데에 노란색이 간혹 끼어있었다. 타투를 받을 때 하나도 안 아팠던 이유를 생각해보니 기계의 바늘이 피부를 덜 파고들어 잉크를 뿌렸던 것 이었다, 세월이 지나 고통의 감각이 무뎌진 것이 아니라 그냥 덜 찔렸던 것이었다. 왕관의 색만 있다 없어진 것 뿐인데 왕관에서 그저 이름모를 산이 된 것도 같았다. 결국 딱지는 다 떨어졌고 이뻤던 노란색은 하나도 남아있질 않았다. 원하던 발색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고통과 관련이 있었다. 역시 무엇인가를 얻고싶을 땐 그만한 고통이 뒷받침되야 상호작용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원하는만큼의 노력에 몰두를 하고 그만한 고통이 따라줘야 진정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멋진 옷을 사고 싶으면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아야하고, 좋은 직장을 가지려면 열심히 공부해 그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야 한다. 그 과정들은 분명 몰두와 고통이 뒷받침 되었겠지.


사람들은 아주 흔한 착각을 아주 당연시한다. 난 이만큼 노력했는데 결과는 왜 이정도밖에 안되는 것인지 쟤가 나보다 못한 것 같은데 왜 나만 이 모양인지 굳이 주위의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그 속에서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노력과 고통은 정비례하지만 각각의 기준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정할 수도 없고. 적당한 선의 기준치를 잡고 난 이정도 스텐다드의 사람이야 라고 정의하며 사는 것이 가장 편할 수 있다. 기준치가 너무 낮아도 문제고 너무 높아도 힘들다. 절대 이 세상은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난 스트레스도 덜 받고 그냥 이정도의 기준으로 살고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적당한 기준치의 편안함에서 오는 결과와 그 결과를 남과 굳이 비교하며 생기는 스트레스까지는 내다보지 못한다. 스트레스를 안 받고자 설정한 기준인데 오히려 의도치 않은 고통을 얻는다. 이러한 고통은 그냥 고통이다. 노력과의 관계에서 오는 상호적인 고통이아니라. 마치 피부과에서 100만원치의 관리를 결제할 때 부과세 10%가 포함되어 110만원을 결제하는 것과 같은 생각지 못한 뉘앙스의 부류다.


살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운이 안좋았다기 보단 고통이 부족했던 것 같다. 운도 실력의 고통의 일부분인 건 맞지만 그 운의 크기도 어느정도 노력을 하였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니까. 적당한 기준치를 잡는 것, 그 결과와 과정에 낙천적으로 반응하는 것, 비교하지 않는 것,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 네 가지만 잘 따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상처가 나도, 딱지가 져도 개의치 않고 선명히 발색 될 고통을 즐기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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