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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Nov 12. 2020

day off

약속없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이 살았다. 어릴적부터 어느 한곳에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향이였던 난 항상 약속이 있는 사람이었다. 학창시절엔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노래방이나 당구장을 갔고 하다못해 근처 햄버거가게를 가서 감자튀김이라도 먹으며 시간을 보냈었다. 혼자 있는 걸 싫어했고 외로워했고, 집보단 밖이 좋았다. 집에 있는 걸 싫어하기도 했고 돈도 벌고 싶어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하곤 밤 늦게 들어가기 일수였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던 건 내 성향뿐만이 아니였다. 잦은 이사를 통해 툭하면 전학을 가야했기에 유치원은 2개, 초등학교는 4개, 고등학교도 2개를 다녔다. 외향적인 성격과 잦은 전학을 다니며 알게 된 주위 친구들이 많았고 금새 친해져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성인이 된 20대 초반의 나는 더 선명해졌다. 서로 다른 길을 보며 마치 n차선의 교차로 한복판 위에서 신호대기를 하던 우리에서 같은 이정표를 보며 같은 도시로 가기 위해 모인 친구들과 함께 엑셀을 밟았다. 우리에게 브레이크는 필요없었고, 기름의 양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일에 상관없이 항상 기대되고 들뜬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당시 대학로에 자취하던 친구집에서 다른 몇 명의 친구들과 살다시피하며 자연스레 혜화와 강남이 동네가 되었다. 집과의 간격은 점점 더 멀어졌다. 무엇하나 성숙하지 못했으나 그게 무기였고 서울에서 아니 전국에서 가장 멋있게 놀며 살고있다 자부했다. 내면의 자신감을 외면이 주체하지 못할 무렵 입영통지서가 날라왔고 주변친구들 중 가장 먼저 입대를 하였다. 군복무를 하며 억압된 곳에서 사회를 바라보니 환경에 따른 괴리감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그 괴리감에 순응할 법도 한데 21개월간의 군생활에서도 난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였다. 휴가를 나갈 때면 거의 집에 있는 날이 없었고, 어쩔 땐 짐만 두고 나와 놀다 복귀날 집에 들어가 짐을 챙겨 복귀를 하기도 했다.


전역을 가장 먼저하여 뒤늦게 군대에 남아있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그 당시 만났던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냈다. 일을 하며 데이트도 하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며 외로움을 달랬다. 입대 전의 즐거움과는 사뭇 달랐지만 새로운 행복을 맛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25살 5월, 어색한 나와 첫 대면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꿈을 쫒아 떠난 유럽행 비행기에서 난 마냥 설레고 불안했다. 초등학생 때 탔던 호주행 비행기 이후로 가장 장거리의 비행이였고, 기대하던 첫 유럽이었으며 누구의 도움없이 오로지 내 힘으로 이뤄내야 한다는 어설픈 강박감과 주위의 응원에 대한 압박감 등이 섞여 미묘한 감정이 형성됬다. 유럽에서의 내 첫 도전은 꽤나 어설펐다. 애초에 스텐다드를 낮게 잡고 갔던 나와 달리 같이 지냈던 친구들은 죽기살기로 도전했고 그에 따른 결과가 명확히 나뉘어졌다. 최선과 최소한이라는 비슷한 억양의 경계에서 난 후자를 택했고 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회피했다. 머릿 속 한켠엔 어떻게든 다른 방법은 만들면 된다는 걸 알았지만 “이정도면 충분해 난 할만큼 했어” 라며 안주했다. 멀티탭에 꽂을 전선 하나가 더 늘어나는 게, 그게 꼬여버려 귀찮아지는 게 싫어 나 자신을 외면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의 소통과 문화차이, 처음 겪는 모든 환경과 육체적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 마주하는 친구들과의 갭 차이는 혼자인 적 없던 25살의 나에겐 실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피로를 풀어야하는 숙소에서 오히려 정신적으로까지 고통을 받았고 생전 처음으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평일에 각자 할당 된 스케줄이 끝나면 우린 숙소 근처 마트에 모였다. 함께 먹을 저녁거리를 장보고 날마다 여러종류의 와인들을 마셨다. 그렇게나마 외로움과 우울감을 달래며 난 하루의 마무리에 취하고 다가오는 내일에 미리 취했다. 주말엔 근교로 기차를 타고 훌쩍 떠나도 보고 근처의 관광지들도 다니며 여행을 했다. 처음 보는 멋진 유럽을 즐기면서도 난 항상 불안함에 휩싸여있었다. 절대적으로 마음이 불안했고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야를 내가 가리며 걸었다. 친구들과는 몇 주간 같은 숙소생활을 하다 각자 달라진 스케줄 탓에 뿔뿔히 흩어졌다. 혼자서 숙소를 찾고 오롯이 혼자서 지내며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했다. 처음엔 안 가본 관광지들을 혼자 가보았다. 쇼핑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람들 틈 속에 껴서 먹어봤지만 즐거움은 그때 뿐이였다. 처음으로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싶단 생각이 들어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엉켜버린 생각과 감정들을 가만히 정리할 곳이 필요했다. 파리 시내에서 벗어나 외각의 이름모를 자그마한 공원, 새벽 인적 드문 센강벤치 등에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고 때로는 구글맵없이 그냥 발걸음이 이끄는대로 무작정 걷기도 하였다. 가방에 책 한권만 넣고서 잔디밭에 가만히 누워 책을 읽었고 낮잠을 잤다. 밤 늦게 와인 한병과 과자 몇 개를 사들고선 에펠탑을 갔고 하염없이 흐르는 센강을 바라보며 사색에 빠지곤했다. 외로움을 마냥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닥들여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본 난 외향적이지도 멘탈이 세지도 않은 지극히 내성적이며 쓸쓸하고, 고독하고, 감성적인 사람이였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오로지 나와 내면의 나만 존재하는 상태로 몇 일을 보냈다. 온전히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그 어색함은 오히려 친근감이 되어 내가 되었다. 그 해 겨울과 그 다음 해 겨울에 간 유럽에서도 난 오로지 혼자서 혼자만의 시간을 멋지게 보냈다. 최소한이 아닌 최선으로 임했고 후회없는 값진 경험들을 얻었다. 전엔 새로운 것만 추구했던 내가 익숙한 장소에 가서 익숙한 음식을 사먹었고, 혼자서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하나 둘 씩 하며 마음이 편해지고 여유가 생기니 새로운 사람들도 사귀었다. 무엇보다 혼자가 되어보니 전에는 항상 신경썼던 남들의 시선을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주제를 나로 잡고 걷다보니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 지, 나는 어떤 색의 사람인 지 분명하게 알아갈 수 있었다.

종종 가만히 혼자 길가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날이 추웠지만 사람들은 게의치않고 야외에 자릴 잡고 커피를 마셨다. 여럿일 땐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람들이 오로지 혼자일 땐 너무나도 잘 보였다. 내 몸집만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애정표현을 하는 연인, 어딘가에 전화를 하며 담배를 태우는 여자, 길 한복판에서 멋진 춤을 추는 소년들과 선글라스를 끼고 가만히 커피를 마시는 사람, 손을 떨며 책장을 넘기는 사람 그들을 보고 있는 나를 보며 가볍게 미소짓던 아주머니 등 동적이거나 동적이지 않은 각기각색의 사람들이 각자만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유럽에 마지막으로 다녀온 지 딱 1년이 지났다. 작년 오늘 이 시간에 추위에 벌벌떨며 센강 밑에서 맥주를 마셨던 난, 1년 뒤 같은 시간에 따뜻한 내 방에서 여전히 맥주를 마시고 있다. 1년이라는 공백간에 비슷한 도수의 알코올이 내 몸에 흐르지만 전혀 다른 도수의 가치관도 함께 흐른다. 한국에 돌아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를 모른 채 원하던 삶을 살았던 나를 뒤로하고 나를 알아가며 새롭게 좋아하는 삶을 찾는 중이다. 아직도 나를 완전히 알진 못하지만 전보단 확실히 뚜렷해졌고 또 친해지고 있다.


요즈음 쉬는 날이면 말 그대로 그냥 쉬며 지낸다. 혼자임을 싫어했고 집을 답답해하던 난 약속도 잘 잡지 않고 최대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그 곳이 꼭 집이 아니더라도 혼자서 고립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나선다. 이젠 나이가 먹은 탓도 있겠지만 사람이 많은 곳은 점차 피하게 되고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한다. 잔잔한 재즈와 레드와인 그리고 글과 그림을 좋아한다. 붉은빛 노을과 차분한 새벽시간을 좋아하고 그 즈음의 서늘한 공기를 좋아한다. 이런 소소한 나의 일부분들을 알 수 있고 즐길 수 있게 해 준 그 시간들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이 세상에 나 밖에 없던 것 같던 그 때, 아니 나와 나 둘만 존재했던 그 때. 그 외로움과 우울함에 감사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자신을 있는그대로 마주하는 건 꼭 필요하다. 아무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고 선택의 연속인 삶 속에서 자신을 마주 해본사람은 좀 더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지않을까. 앞으로도 외로움을 자주 즐기며 사는 인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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