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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Dec 08. 2020

임 자 복 자 희 자

있을  잘해야 한다 말은 이별의 상황에서 쓰인다. 보통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사랑했던 연인과의 헤어짐, 나머지 하나는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  가지  후자에 대한 감정은 간접적으로 겪어보지 않을  몰랐고 와닿지 않았다. 2  10 덥고 무겁던 공기가 시원하게 가벼워  무렵  도로 위에 있었다. 유럽에서의 모델로써  도전을   한국에 돌아와  번째 도전을 위해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네의 피자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할머니와 본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연세가 들다보니 몸이 성한 곳이 없으셨다. 허리는 점점 굽어갔고 무릎엔 수많은 수술자국이 난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내의 노인정과  근처 산책로를 달그락거리는 보행보조기를 끌고 다니시곤 했다. 할머니는 유독 걱정이 많은 사람이였다. 유독 아빠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일의 특성상  늦게 들어오는 아빠에게 수없이 전화를 하곤 했다. 연락이 안되면 온갖 상상을 하며 나와 엄마에게 연락을 했고 결론적으로 안심을 시켜드리는 것이 하나의 집안일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셔셔 그랬는지 그냥 여느 노인들처럼 가볍게 했던 말이었는진   없지만 종종 빨리 자신이 죽어야한다고 말을 하시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괜히 기분이 나빠져 그런말  하지말라고 화를 내곤했다.


  9월초쯤 할머니는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지셨는데 뼈가 연약했던 탓에 급히 병원에 입원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근처 종합병원에 입원을 하고  일이 지났을 무렵 상태가 많이 안좋아져서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까진 정말 별거아닌 일로 여기곤 면회 조차도 가질 않았었다. 엄마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에 몇일 전까지만 해도 같이 티비를 보며 치킨도 먹곤했었던 할머니가 갑자기 그렇게 변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도 않았고 걱정도 되는 맘에 눈으로 직접 뵈야했었다. 중환자실은 오전에 30분간만 면회가 가능하다하여  시간에 맞춰 쉬는 날에 스케줄을 잡았다.


 날은 날씨가  좋았다. 적당히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는데 노을이  이쁘게 지고있었다. 눈으로만 남기기 아쉬워 핸드폰을 꺼내 노을 사진을   찍었다. 다음 날이 쉬는  이였으므로 얼른 퇴근하고 내일이 되어 할머니에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8시가  넘은시간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순간 무거운 촉이왔다. 뭐랄까  전화를 받으면 안될 것만 같은...... 그런. 핸드폰 화면엔 엄마라고 써있는데 이상하게도 바로 할머니가 생각났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들려오던  엄마의 울음뿐이었다. 전화를 끊고 컴컴한 골목길에 오토바이를 세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노래를 끄고 담배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같지만 현실이었고 이상하리만큼  사이의 괴리감은 무던했다. 매장에 상황을 설명하고 곧장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처음 맞닥들인 가족의 죽음에 멍했고 차분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고 직접적인 관계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겪은  처음이였기에 모든  낯설었다. 내일 오전 병실에서 보려했던 할머니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차가운 곳에서 나왔다.  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차마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눈물도 한방울 나오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미안하다고 되내기기만  뿐이었다. 밤새 가을비가 여름 장마마냥 내렸다. 빗물에 나뭇잎은 잘만 흘러가는데  속은 씻겨지지 않고 고여만갔다.


집에 돌아와 할머니가 지냈던  문을 열어보았다. 서늘하다 못해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한순간에 몰아쳤다. 장례를 치르는동안 이상하리만큼 슬프지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건지 슬픔이라는 감정을 뇌가 아직 자각하지 못한건지   없었지만 그냥 한순간의  같았다. 이불  덮고   자고나면 모든게 원래대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서랍장 위엔 이젠 물품에서 유품이 되버린 할머니의 흔적들이 올려져있었는데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았던 내가   어떠한 것을  순간 미친 듯이 울었다. 바로 핸드크림이었다. 재작년  상하이로 여행을 갔을  내가 사다주었던 핸드크림이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아껴서   사용한 흔적이 보였다. 핸드크림을 바르는 할머니의 표정과 행동이 뚜껑에 오버랩되어 가슴이 애려왔다.


하늘이 가장 높을 즈음 홀로 할머니를 뵈러 다녀왔다. 근처 마트에 들러 생전에 좋아했던 밤맛 아이스크림을   산을 올랐다. 선선한 바람이자 주황빛 햇살의 할머니는  왔다고 보고싶었다며  반겨주었다. 대답없는 1차선의 이야기들을 건내고 땅에 꽂아놓은 아이스크림이 서서히 녹을 무렵 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왔다.


몇일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베란다를 열고 들어왔다. 내게  지내냐고 말하던 실루엣은 분명 할머니였다. 너무도 생생하여 꿈에서   한동안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아이스크림을 샀던   꿈에 나와달라고 말했었는데 한달이 지난 뒤에야 나온  보니 여기와의 시차가 한달 이상 차이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택없이 태어나고 언젠간 죽음을 맞는 우리들은 문득 사는동안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삶을 산다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라는 주체를 ‘무엇이다 라고 정의를 내리긴 어렵지만 경험을 중요시 하는 나에겐 살아가는 방향은 반딧불과 비슷한  같다고 말하고 싶다. 조그마한 빛들이 하나  모이면 이쁜 풍경을 만들어내는데  빛이 보고 듣고 느꼈던 어떠한 새로운 경험들일수도 있고, 오늘 수고한 자신에게 해주는 칭찬일수도 있고, 소소한 자기계발이나 퇴근  마시는 맥주 한캔이  수도 있다. 자신의 하루하루에 조금씩 쌓이는 조그마한 빛들이 모여 이쁜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대신에 쉽진 않겠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고 다름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려는 자세도 함께 가져가야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대비 아닌 대비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즐기는 것이다. 일하고 놀고 쉬며  순간자체를 즐기면 된다. 최선을 다해 시간을 보내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면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면 된다. 적어도 후회없을 만큼만. 각자의 취향에 맞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시선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별에 대한 면역력을 조금이나마 키우는 방법인  같다.


10 04일에 날짜처럼 하늘의 1004  할머니에게도  글이 닿았으면 좋겠다. 이별이란 소중한 감정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오늘 밤에도 꿈에 나와달라고 말해야겠다. 다음 달에 나와줄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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