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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Dec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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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창문을 보니 시야가 온통 하얗게 덮여있었다. 새하얀 눈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덮고, 울퉁불퉁 보도블럭을 덮으면 마치 약속이라도   아이들이 뛰쳐나오고 각기각색의 눈사람들이 태어난다. 출근을 위해 1 공동현관을 지나 새하얀 바닥에  발자취를 남기며 걸어갔다. 추적추적 비가 눈과 함께 내려 무겁고 빠르게 머리를 적셔가는 바람에 뽀독한 눈의 촉감을 느낄 새도 없이 서둘러 정류장으로 향했다. 둥글게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면 내리는 속도만큼의 느긋한 여유도 함께 보이곤 하는데 비는 눈과는 확연히 정반대의 성향으로 어둡고 뾰족하며 빠르고 비리다. 눈만 펑펑 오면 좋겠겄만 비를 좋아하지 않는 내겐 조금 아쉬운  눈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작년을 회상 해보았다.  눈이 오던 어느 작년겨울 , 나는 누군가와 어디에 있었는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전혀 기억나질 않았다. 분명 작년에도 눈은 왔을텐데  기억엔 흐릿한  보니 딱히 인상깊던 날은 아니었나싶다. 하긴 이젠  오는   별일인가 싶다. 그저 여러 변덕스런 날씨  하나일 뿐인데.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의 하늘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확연히 기온도 색깔도 모두 포근했던 기억. 분명 추운 겨울인데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만의 분위기가 있다.  분위기를 품은 한겨울의 삼청동을 좋아한다. 저녁 무렵 삼청동의 거리를 걷다보면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을 간간히 만날  있다. 한적하고 고요하지만 답답하지 않은, 오히려 담담하고  담백한 한옥을 마주하며 걷다보면 심심치 않게 주황색의 백열등들을   있다. 밖은 춥지만 안은 한없이 따뜻해보이는 통유리의 가게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신기하게 포근한 느낌을 받는다. 분명 추운  맞는데 포근한 것도 맞아 떨어지는 멜랑꼴리한 현상. 그렇게 시린 찬공기를 맞고 겨울내음을 맡으며 입김과 콧바람의 농도가 비슷하게 뿌옇게 되면 근처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몸을 녹이면 좋겠다. 꽁꽁 얼어 빨개진 귀가 말랑해지고, 눈이 노곤노곤하게 풀려갈 즈음 따뜻한 카페모카  모금과 함께라면 좋겠다.  노곤함을 나눌  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이 좋겠다.


 훗날 내가 회상하는 나의 겨울은 알록달록하지 않았으면 한다. 충분히 시리면서도 포근한 그러한 비슷한 톤의 내가 겹겹이 쌓여갔으면.  포개짐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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