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준 Dec 29. 2020

타이밍

흔히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한다. 사랑과 타이밍이란 무엇일까. 보통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동시간대의 나를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순간의 감정을 가리키는 화살표의 방향은 대부분 엇갈리곤 한다. 엇갈리고 꼬인 감정의 끈을 푸는 것, 자연의 운명에 순종하지 않고 타이밍을 조각조각 내 다시 이어 붙여가는 것. 어쩌면 그렇게 만들어진 인위적인 타이밍의 존재가 더 매력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연과 연인. 앞 뒤 글자만 다르고 의미도 비슷한 말 이지만 둘의 타이밍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연, 즉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자발적인 타이밍 없이도 자연스레 연결되지만 연인은 그렇지 않다. 연인이 될 인연 사이에는 인위적인 타이밍이 존재하여야만 한다. 한 쪽으로 치우친 타이밍을 발견하고 맞춰가는 발걸음이 있어야만 연인으로서의 새로운 걸음을 함께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핸드폰보다는 집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니던 시절. mp3에 노래를 다운받고 길거리 곳곳의 공중전화가 익숙했던 시절. 통화를 위해 바지 주머니에 동전 몇 개가 짤랑거리던 시절. 그 땐 주변의 모든 게 타이밍이었다.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서로의 집 전화를 통해 타이밍을 맞춰야 했고, 정성스레 쓴 손편지를 건네 줄 타이밍을 갈구하여야만 했다. 현재에도 타이밍은 항상 존재하지만 그 당시의 아날로그적인 타이밍에는 순수함과 깨끗함이 함께 존재했다. 그 설레임을 좋아했다.


연인이 생기면 종종 좋은 감정을 전해주고 싶어 한다. 말로는 표현력이 무뚝뚝한 편인 내가 쓰는 방법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다. 꼭 이쁜 편지지가 아니더라도 눈에 보이는 종이에 삐뚤비뚤 글씨를 써 살며시 전해준다.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은 모두 삐뚤지 않을 걸 알기에.


시대가 변하면서 아날로그성 타이밍은 사라져갔다. 그 것에 대한 필요성을 지워내며 사회는 편하게 또 이기적이게 변해버렸다. 하지만 가끔씩은 그럴수록 그 불편함을 그리워한다. 기다림을 당연시 여기고 조급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기다림이 설레임으로 증폭되던 그 아날로그의 감성을 좋아한다. 핸드폰을 덮어 놓고 턴테이블로 노래를 듣고 90년대의 색감이 주체가 된 영화를 찾아 보며 그 때를 회상하곤 한다.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위해 인위적인 타이밍을 만든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으로.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촌스럽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사랑. 지나갈 인연에 잘가라 손 흔들고, 보내기 싫은 인연엔 한없이 뒤엉키고만 싶다. 그 뒤엉킴을 풀어 갈 시간 속에서 흩어진 조각들을 맞추어 갈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싶다. 그 타이밍을 그리워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어쨌든 메리 크리스마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