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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Oct 07. 2021

발걸음 속 내포되어 있는 것들

무언가에 우연히 영감을 받고는 마음속의 감정선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땐 보통 코 끝이 찡하게 울리곤 하는데 그 느낌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최근 ‘오징어 게임’으로 인해 유명세가 가해진 배우 허성태 님의 영상을 찾아보다 뜻하지 않게 좋은 영감을 받았다. 2011년 35살 늦은 나이에 대기업 사원이라는 탄탄한 길을 과감히 포기하고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 그의 존재와 연기를 알렸다. 안정적인 현실을 포기한 채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무기한의 적막한 길을 택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인데 결과를 떠나 그것을 행동으로서 입증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원하는 것에 앞뒤 안 가리고 도전하는 정신과 그보다 앞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큰 축복임이 분명하다.



정확히 2~3년 전 이맘쯤엔 나도 정말 좋아하는 것이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과감히 도전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꿈꿨었던 목표를 10년 만에 오로지 내 힘으로 이루었고, 그보다 더 커진 목표를 향해 내 두 발은 익숙했지만 한없이 외롭고 낯선 곳을 걸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화재로 무너진 노트르담 대성당이 재건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센 강 옆을 하염없이 걸었고 새벽 늦게까지 강가 옆 벤치나 에펠탑 주변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캔맥주나 와인 따위를 홀짝이다 숙소로 돌아가곤 했다. 허성태 님은 영화 ‘밀정’에서 배우 송강호 님에게 뺨을 맞으면서도 너무 행복했었다고 말했는데 그 말에서 3년 전 그때의 내가 겹쳐 보였다. 반지하 방에 앉아 돌같이 딱딱한 1유로짜리 바게트 빵을 물에 녹여 먹으면서도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난 그때의 나와는 많이 달라져 있다. 내면은 분명 그때의 바게트 빵처럼 단단해졌는데 목적지가 없는 길을 걷고, 그 길 위에서 방황하고 하염없이 제자리를 돌고 있는 그런 정체되어 있는 느낌을 지우는 게 쉽지만은 않다.



전에 머물렀던 우물의 깊이가 너무도 깊었고 꼭대기를 올라와 어색하게 마주한 세상에서 난 터벅터벅 걷는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시간이 흘렀고 때마침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몸을 피할 곳을 찾다 내 눈에 띈 건 자그마한 얕은 물웅덩이였다. 난 급하게 몸을 빠뜨렸고, 물 표면에서 헤엄쳤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 잠수하는 법을 터득했고, 물속으로 몸을 욱여넣어보았지만 얕은 수위 탓에 몸의 일부분은 항상 수면 위로 삐져나오기 일쑤였다. 누군가 나에게 행복한가 물어본다면 대답은 분명하겠지만 그 음성에 의구심이 드는 것도 분명해지는 요즘이다. 오래되어 해진 신발을 신고 걸어온 발자국은 깊고 선명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새 신발로 갈아 신은 걸음은 평탄하고 흐릿하여 자국이 잘 남지 않는다. 용도에 맞는 진한 색의 신발을 새로 사고, 한 걸음 한 걸음에 체중을 실어 무겁게 걸어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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