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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Nov 25. 2021

좀비

11 중순, 부산에 사는 친구가  보기 위해 잠시 서울로 올라왔다. 먼저 도착해 서촌의  카페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카페 입구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입구로 나갔다.  앞에서 마주친  친구의 손엔 새빨간  송이 장미가 들려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라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보다 고마움이  컸다. 하루 종일 부쩍 추워진 날씨를 머금은 찬바람에 이리저리 치인 잎사귀는 그새 풀이 죽어버렸다. 집에 들어와  가지를 조금 잘라내고 화병에 물을 담아 넣어주었다. 이미 죽어버려 차가워진 장미는  말이 없었다.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하는 탓은 분명 귀찮음 때문이었다. 침대 근처 수납장 위에 자리 잡은 장미는 언제든 내 시야 안에 공존했다. 화병 안 물을 새로 갈아주는 건 채 1분이 걸리지 않는 일이지만 24시간 중 그 몇 초를 이미 죽은 것에 할당하는 건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장미와 함께한 지 5일째 되는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무심하게 쳐다본 그것엔 분명 무언가 확연히 다른 느낌이 있었다. 시야를 낮춰 자세히 보니 가지 중간쯤에서 새로운 잎사귀가 22개나 생겨나있었다. 새로 난 작은 잎사귀들은 죽음을 거스르며 더욱 푸릇한 녹색을 띠었다.



적잖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말 못 하는 식물에게서 들려오는 말을 들은 기분이랄까. 살고자 하는 욕망과 자신이 속해있는 환경 따위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느냐에 따라 전혀 문제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8개월 만에 다시 바뀔 환경 앞의 난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불가능한 이론을 뒤집을 만큼 과연 절실한가 다시금 되뇌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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