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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May 19. 2022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다.

밝은 것보단 어두운 게, 단순한 것보단 조금은 복잡한 게, 시끄러운 것보단 고요한 게, 가벼운 것보단 무거운 게, 10시보단 6시가, 15시보단 19시가, 22시보단 2시가 좋다.



지난 2월에 본 신점의 예언들이 얼추 맞아가는 걸 보며 요즘은 참 정신이 없다. 마음이 가는 대로 단순히 행동하고 싶지만 항상 생각이 행동을 앞서는 나에겐 그저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마음이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려 하고, 의도치 않게 받고 또 받다 보면 노력의 마음은 곧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변질되어만 간다. 고마움이 당연시되어가려는 인식의 흐름을 바라보는 것도, 미안함을 덮으려 팔을 뻗는 행위도 전부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방어한답시고 만들어 낸 뾰족한 가시는 누군가에겐 장미꽃의 일부가 되어 매혹적이게 되고 그 꽃에 누군가는 홀려 향기를 맡는다.



서로의 상황을 인지한 둘은 불편하고 위험하며 또한 용감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다. 주변에 달린 수많은 눈들은 철석같이 안대에 가려져 있다 믿고 마음속의 여럿 감정들과 머릿속의 추억들은 한데 뒤엉켜 갈피를 잡지 못하지만 그마저도 그대로 아름다워 보인다.



‘과연 이게 맞는 건가?’라는 물음이 어디선가 들려오면 그건 분명 맞는 게 아니란 걸 난 알고 있다. 또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모른 채 하려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표정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과거에 슬며시 흘려보냈던 그 감정은 2년이 흐른 후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으로 인해 불이 붙었다. 어두운 재는 이리저리 방황하며 허공을 날아다니고 재 가루에 자연스레 기침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목이 아프진 않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만 그건 허무맹랑한 욕심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가끔은 악역을 자칭하며 한 송이 장미꽃이 되어 보는 것도 나름 괜찮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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