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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Jun 18. 2022

구십사

마지막 매듭을 묶는데 정확히 3달하고 하루가 흘렀다.



아직은 쌀쌀했던 우리의 첫 만남을 뒤로 한 채 집으로 오는 밤거리엔 미적지근한 바람이 불어왔고 그건 그 나름대로 나름 선선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꽤 오래 외로운 존재였다. 지금도 충분히 그렇고 앞으로도 이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다. 나는 항상 언제 어디서든 외롭기만 하다. 긴 시간 동안 홀로이 잘도 버텨왔다. 아니 버텨온 게 맞나 그저 흘려보냈다 해야지.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에 상응하는 퍼즐을 찾지 못했다. 삐걱대고 점선 없는 교차로에서 우리들은 항상 조금씩 핸들을 꺾었고 그러나 결국 실선을 넘진 못했다. 나도 너도 또 다른 너도 너도 너도 전부.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 중 무엇이 앞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머리가 지끈 하고 어지러워지다 보니 끝내 한없이 차가워져 버렸다. 머리카락은 색을 잃는다. 백색의 모습을 한 가닥가닥은 꾸준히 생각을 이염시킨다. 또 다른 하얀 공간에선 자꾸만 핏자국이 묻어 나온다. 누군가 물어온다. 이거 핏자국이냐고. ‘아니요, 그거 그냥 커피에요.’



이젠 한 주에 5일씩 꽃꽂이를 한다. 죽은 꽃과 잎사귀를 제거하고 가지 밑단을 조금 잘라낸 뒤 꽃의 얼굴을 잘 보이게 화병에 넣고 물을 갈아준다. 꽃들은 한 화병에만 평생 머무르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제 몫을 한다. 쳐야 할 건 쳐야 하고 완전히 떠나보내야 하는 건 그렇게 미련 없이 보내주어야 한다. 시들고 꺾이고 버려진 것들은 언젠가 다시금 흙으로 줄기로 그리고 또 다른 꽃이 된다. 어딘가에선 또 누군가에겐 새로운 존재가 될 테지만 그 꽃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는 난 알 수는 없다.



비가 왔고, 술을 마셨고 우린 잠시 엇갈렸다. 엇갈린 10분 남짓 한 시간 동안 난 건물 상가 안에 쪼그려 앉아 비 내음에 섞인 누군가의 담배연기를 고스란히 맡았다. 화가 났고 한 달의 시간은 생각보다 제법 길었다. 시간 속 메마름은 손과 표정과 그리고 공기까지 전부 굳혀버렸다. 마지막 내 손가락을 잡던 너와 그저 앉아서 가라고 밖에 말하지 못하는 난 그 순간 제법 닮았던 것 같다.



곧 머지않아 장마가 오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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