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자격

나는 어른인가요?

by 조이

‘어른 김장하’는 2023년에 나온 다큐멘터리인데 올해 다시 상영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의 주심을 맡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근래의 세간에 떠올랐다. 문 재판관은 김장하 님이 주신 장학금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가 이 영화가 재조명 받고 있다.

영화 내내 하나의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 어른 김장하의 정신을 보았다. ‘나의 것은 사회의 것’이라는 인생관이다. ‘내 것도 내 것이요, 남의 것도 내 것이다’라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불행하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 한 떨기 청초한 연꽃을 보는 듯하다. 감동의 여운으로 눈물이 나올 듯 말 듯 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고 나에게 물었다.

김장하 님은 문형배 재판관에게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라고 말했다. 김장하 님은 시가 110억가량 되는 진주의 명신고등학교를 나라에 헌납하였다. 그리고 많은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일명 김장하 키즈라 불리는 사회 인재들을 길러냈다.

팔순을 넘기신 김장하 님의 얼굴이 밝다. 나이가 들면 얼굴이 밝은 얼굴과 어두운 얼굴 두 종류로 나뉜다고 한다. 밝고 어두움은 어떻게 나뉠까. 그 중심에 욕심이 있지 않을까. 머리카락은 하얘지나 얼굴의 눈빛과 분위기가 깨끗하다. 맑은 호수를 보는 느낌이다.

이 영화는 어른의 자격에 관해 묻는다. 어른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다. ‘누구나 책임을 다하지 않나?’라고 할지 모른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과 사고의 원인은 책임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세월호 사고가 떠오른다.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이 회사에 가서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어른들이 감당해야 할 힘든 일을 학생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책임을 감당하는 데 걸림돌은 무엇일까? 본질로 접근하면 인간 본성의 욕심과 관련이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욕심이 있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과자를 한 손에만 쥐지 않는다. 두 손에 쥐고 먹으면서 다른 과자를 또 쥐려고 욕심을 부린다. 하나를 가지면 두 개를 가지고 싶다. 어린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은 욕심을 내려놓는 성숙함에 있다. 나이는 어른이지만 어린아이와 같이 욕심을 부리는 사람을 어디서나 보고 있다. 식당에서 반찬과 단무지를 쌓아놓고 먹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다. 한 해에 내다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가 14조 7,000억 원이다. 처리 비용까지 합치면 15조 1,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환경 문제가 큰 이슈로 떠올라도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김장하 님은 욕심을 내려놓았다. 인생의 어느 한순간이 아니라 여든을 넘긴 지금까지 ‘줬으면 그만이지. 다시 받으려고 하나’라고 하신다. 상이라는 명예와 1억의 돈을 한마디로 거절했다. 평생 소유욕에 들끓는 마음을 지킬 수 있다니 놀랍다.

김장하 님에게 돈은 자신의 소비를 위한 도구가 아닌 이타적인 나눔의 도구다. 그분이 양복을 입다가 한쪽 팔이 걸렸다. 셔츠 단추가 양복의 해진 안감에 걸려서 팔이 들어가지 않았다. 양복의 겉은 멀쩡해서 영화 내내 양복 하나를 입으셨다. 단벌 신사다. 신사의 품격이 흘러나온다. 품격은 양복이 아니라 삶에서 나온다.

김장하 어른은 진주에서 한약방을 하시고 번 돈으로 장학 사업을 하셨다. 학생들에게 직접 장학금을 건네주면서 사람 농사를 지었다. 사회 각처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일군을 길러내셨다. 풍년의 기쁨을 느끼는 어르신의 얼굴에 만족의 미소가 퍼졌다. 이웃과 사회를 향한 책임감이 있었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기억나는 부분은 두 어른의 뒷모습이다. 한 분은 등이 굽으신 조심조심 걷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다. 평범한 할아버지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된다. 두 종류의 노인이 있다. 책임을 다하면서 산 노인과 거머쥐고 사느라고 책임을 다하지 않은 노인이다.

김장하 님의 인생길 전체가 한편의 명화이자 명곡이다. 사사로운 모든 감정을 잠재우고 대의를 품게 하는 숭고함을 전해준다. 나를 뛰어넘어 이웃과 사회를 바라보는 큰 뜻을 일깨운다. 정결 의식을 치르고 마음을 씻은 듯 고요하고 평안하다. 나도 대의를 품었다. 대의 앞에서 밀물처럼 사사로운 감정들이 밀려간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 떠오르는 교사가 있었다. 어느 목사님의 중학교 교사다. 목사님은 가난하셨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는 돈이라는 것을 벌어온 적이 없으셨다. 어머니가 육체노동을 해서 생계를 유지했다. 목사님이 50대이셨기에 당시의 무서운 총각 선생님이라면 상상이 간다. 선생님은 월세방에 살면서 반 학생들에게 간식비를 내기로 걸었다고 한다. 꼴찌를 도맡아서 하던 반은 상위로 올라섰다.

어느 날, 선생님이 목사님의 이름을 불렀다. 목사님은 인자한 선생님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목사님이 가난해서 실업계고로 진학해야 함을 알고 계셨다. 선생님은 목사님의 어머님까지 설득하셔서 인문계고로 진학하도록 도와주셨다. 고등학교에 계신 선생님에게 목사님을 부탁까지 하면서 말이다. 목사님은 인문계고에 들어가서 서울대에 진학하셨다. 자신의 책임을 다했던 선생님이다.

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가르치는 역할 이전에 삶의 본이 되고 싶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고 친절하게 책임을 다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사회의 일군이 될 날을 기대한다. 자신들의 성장과 변화에 도움을 준 어른 선생님으로 나를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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