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냈니?

인사말의 의미

by 조이

"어떻게 지냈니?"라는 인사를 받은 적이 있다. 언제인지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시간이 좀 많이 지나서다. 사람들에게 대체로 "잘 지냈니?"라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나도 사람을 만나면 "잘 지냈니?"라고 습관처럼 인사말을 던진다. "어떻게 지냈니?"라는 인사가 인상적이었다. 그 인사를 받고 나의 일상을 줄줄 다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소소한 감정까지 말이다. 관심이 느껴졌던 그 인사말을 들었던 후부터 "잘 지냈니?"라는 말 대신에 "어떻게 지냈니?"라고 인사를 한다. 그 사람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는 심정을 넣어서 말이다. 어쩌면 나누고 싶은 이야기로 좀이 쑤실 수도 있으니까.


온라인 청소년 교육 일을 하고 있다. 줌 수업을 열면서 "어떻게 지냈니?" 안부 인사를 하면 중학생들이 “잘 지냈어요.”라고 말한다. 매 수업 시작할 때마다 "어떻게 지냈니?"라고 묻고 학생들도 “잘 지냈어요.”라고 대답한다. 한두 번 넘게 이 대답을 들으면 더 이상 아무 할 말이 없다. 기운도 빠진다.

초등학교 돌봄교실 책 놀이 가서 "어떻게 지냈니?" 하면 아빠와 엄마랑 워트파크 갔고, 어제 키즈카페 가고 불고기도 먹었고, 경주에 여행 다녀왔다는 이야기가 돌아온다. 초등학생은 매주 다른 구체적인 대답으로 신기함과 흥미를 준다. 그 대답을 들으면 얼굴의 근육이 풀리면서 “그랬구나. 재미있었겠다”라는 말과 함께 입가의 미소가 지어졌다.

중학생이 되면 왜 같은 대답만 줄기차게 할까? 중학생은 이 대답이 식상함을 준다는 느낌이 없는 것 같다. 줌 온라인 네모 화면에 담긴 학생들의 표정을 찬찬히 보면서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핀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대답으로 보인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인사를 하는 메마른 상태라고나 할까. 애써 이해해보려고 감정 코칭 강의에서 청소년은 뇌가 자라고 있어서 자기중심적이라는 강사님의 설명을 떠올린다.

인사이드 아웃 2의 주인공 라일리는 여중생이다. 3일간의 하키 캠프에 다녀온 뒤 부모님이 캠프가 어땠냐고 물었다. 라일리는 무언가 스치고 지나간다는 표정을 하다가 ‘지루한 감정’이 발동하여 “좋았어.”라고 한마디 한다. 본부의 감정들이 3일 캠프를 “좋았어.” 한마디로 이야기하는 건 너무하다고 반응한다.

따뜻한 어느 늦봄에 이 선생님을 만나러 대안학교로 갔다. 가져간 커피를 타고 있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이 선생님이 물었다. 학생들에게 내가 묻는 말인데 조금 더 마음이 들어간 어조다.

"잘 지냈어요."라고 표정 없이 말하는 학생들이 떠올랐다. 사실은 어른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럴 때면 인간관계를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존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나의 손을 딱 뿌리치면서 거절하는 몸짓이다.

"잘 지냈어요.”라는 말의 의미를 추측해 보았다. 별로 못 지냈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기가 싫어서다. 원하는 일이 뜻대로 안 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잘 안돼서 실패와 절망을 말하고 싶지 않아서다 중학생의 “잘 지냈어요.”가 습관적인 인사 표현 정도라면 어른들의 “잘 지냈어요.”는 거리감이 멀다는 의미다.

선생님에게 그렇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요일별로 여러 가지 예를 들어 대답했다. 그랬더니 궁금한 부분에 대해 다시 질문했다. 그 부분을 상세하게 대답했다. 둘 사이에 대화가 시작된다. 이런 대화는 친밀감을 준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이 선생님을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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