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과 공감 사이에서
현대 사회의 선은 즐거움이다. 즐거움은 올바르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정의, 평화, 평등, 분배, 나눔 등과는 거리가 멀다. 즐거움을 위한 소비가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SNS에 각양각색의 소비를 자랑하고 과시한다. 소비를 위해서는 소유가 많아야 한다. 사랑과 결혼조차 소유의 조건이 붙는다. 물질과 좋은 직장, 사회적 위치를 소유해야 즐겁다고 말한다. 승진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재산을 늘리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시기와 경쟁은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AI시대에 멸망하지 않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어려움과 고통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얼마 전에 ** 현장 노동자가 아내와 같이 일하다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청소 노동자나 외국인 노동자, 노인들과 어린이 등 사회의 약자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보다 돈을 더 우선시하는 인간 경시는 한국 문화 곳곳에 퍼져 있다. 안전사고로 인해 노동자가 수시로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 신문에서 한 해에 한국 거주 외국인 노동자가 3천 명이 죽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무관심이 죽음을 부르고 있다.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무자비함과 잔인함을 본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친절이 없는데 그 바탕에는 무관심이다. 인간을 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다. 결과를 산출하는 기계로 취급한다. 이 땅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교육 비전을 품고 일을 하면서 부자들을 겪었다. 사무실과 공장에서 일도 하고,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식당에서 서빙과 설거지를 했다. 본 대로 말하면 부자가 더 인색하고 까다로웠으며, 존중감이 부족했다. 소유가 많으면 마음도 넉넉할 줄 알았다. 소유는 많은데 마음이 가난하다. 아이러니다. 물질의 소유는 사람을 거만하게 만드는 것 같다. 많이 소유하지 않아서 감사하다. 소유보다는 마음이 부유해야 즐겁다. 소유와 즐거움은 일치하지 않는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복잡해지면서 다양성을 드러낸다. 한국은 인구 절벽이나 외국 유학생과 이주민 수가 250만 명을 넘어섰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고,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이다. 피부 색깔이나 외모와 문화가 다른 세계 각지의 사람이 들어온다. 얼굴이 까맣다고 인종 차별을 한다는 외국 유학생의 인터뷰를 보았다.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가면서 다양함에 대한 수용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우리와 다르면 혐오와 차별을 합리화하는 증오를 넘어 다양성을 이해하면서 가야 한다. 얼굴이 검은 사람이 난민에게만 있다고 여긴다. 한국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흑인 학생도 있고, 동네에서 자주 만나는 주민들도 있는데 말이다. 누구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영향을 받고 산다. 글로벌 사태의 영향도 받는다. 신이 아닌 이상 통제할 수 없다. 홀로 섬에 갇혀서 고립한 채 살기는 불가능하다. 사회는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람은 평화를 싫어하고, 나누고 구분하기를 좋아한다. 어린아이들도 아파트 평수가 같은 동 아이들과 논다. 여행을 못 간 아이들에게 ‘개근 거지’라는 말을 지어준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상류층, 중산층, 서민층이라는 계층이나 계급으로 구분해서 학력과 사회적 위치, 사는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린다. 세대 간에도 나눈다. 서울과 지방을 나누고, 분당은 성남과 구분 짓는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 탈북민을 구분한다.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무관심하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사회의 평화를 지키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이 사회와 사회 구성원의 문제에 대한 무관심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어야 문제가 해결되고 불평등이나 차별이 해소된다. 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침묵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서로의 고통을 공감하면 평화 지키기가 가능하다. 평화 지키기란 약자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고 돌보며, 배제하지 않고 공존함을 의미한다. 평화를 지킬 때 행복도 따라온다. 시기, 경쟁, 다툼, 싸움, 분열, 전쟁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지구상에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삶이 피폐하다. 공존을 위해서는 총을 내려놓고 악수부터 해야 한다. 평화가 사람을 살린다. 평화는 희망과 기대를 담고 있다. 평화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때 시작한다. 갈기갈기 나뉜 사회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없다. 역사에서 나라가 패망할 때 많은 경우 내부의 분열로 자멸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평화를 통해서 공존해야 같이 생존할 수 있다. 나와 다른 처지의 사람을 존중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때 즐거움이 온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주고 등을 토닥이면서 평화롭게 사는 사회를 상상한다. 행복한 상상은 현실이 된다.
죽음은 순서가 없기에 늘 가까이에 있다. 경쟁하고 시기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죽음 앞에서 거꾸로 살았다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 방향을 맞추고 바라보면서 가고 싶다. 인생의 끝이 있음을 날마다 기억하고 싶다. 피스메이커로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죽음 앞에서는 사랑만이 남을 테니까. 신이 허락한 선물 같은 하루를 살면서 사랑하고 용서하고 감사하고 화평하면 즐겁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