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이의 변화

나는 무엇이 변화되었는가?

by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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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의 교회학교 교사를 대략 20년 넘게 했다.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그냥 20대부터 시작했다. 교회의 교사로 학생들과 지내면서 청춘과 젊음을 보냈다. 해마다 교회 수양관에 수련회를 간 추억들이 차곡차곡 인생의 필름에 쌓여있다. 고등부 교사로만 15년이 넘게 봉사했다. 교육 일도 하고 반평생을 살면서 사람은 변화가 잘 안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사소한 생활의 변화조차 일상에서 잘 일어나지 않음을 확인했다. 나는 무엇이 변화되었는가?라고 질문하면 부끄럽지만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데 꿈적도 안 하고 옛 모습 그대로인 나를 보면 허망하다.

변화는 쉽게 오지 않는다. 가족들을 이십 년, 삼십 년 단위로 보는데 변화되기는커녕 더 이기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말도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더 거칠어진 느낌이다. 학생을 교육하면서 3개월마다 교육 후기를 소감문으로 써서 발표하게 한다. 청소년기는 변화의 반응이 소소하게 있어서 다행이다. 학생의 소감문을 들으면서 자신의 변화를 설명하는 학생을 보면 대견하다. 미소가 저절로 나오면서 웃는다. 기특해서 손뼉을 쳐주고 싶다. 한 번의 노력만으로 변화는 오지 않는다. 그동안 고군분투한 시간이 쌓였기에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개중에는 무엇이 변화되었는지 잘 모르는 학생도 있다. 그래도 이해한다. 콩나물에 붓는 물이 다 빠져나가지만, 이후에는 자라기 때문이다.

교육에서는 회복, 변화와 성장, 이런 단어들로 교육의 효과나 목표를 삼기도 한다. 학생에게 “매일 조금씩 천천히 실천하세요.”라고 주문처럼 말한다. 말은 쉽지만, 하루 5분씩 스트레칭하기도 얼마나 지속하기 어려운지 실감한다. 영어 앱을 깔고 하루에 3단어와 3문장을 원어민 발음으로 따라 읽기를 하자고 학생들과 말해놓고 건너뛰기 일쑤다. 오늘도 잊어서 못 했다. 주로 오전에 시간이 설정되어 있으나, 다른 곳에 신경을 집중하면 어느새 의식도 없이 보낸다. 학생에게 회복, 변화와 성장이라는 말은 사용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변화가 강요로 오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사 인생 중에 변화라고 여긴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교회에서 만난 JM이다. 나의 반은 아니었는데, 나의 반에 절친이 있다 보니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다. JM이는 교회 예배에 늘 지각을 했다. 같이 다니는 친구들과 무리지어 예배가 시작한 뒤에 슬리퍼를 끌고 들어오면 눈에 확 띄었다. JM이의 친구들도 슬리퍼를 끌고 왔다. 슬리퍼를 보면서 JM이가 슬리퍼를 안 끌고 왔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드렸다. 어느 날, JM이가 운동화를 신고 교회에 나타났다. 변화다.

언제는 우리 반 학생과 JM이와 같이 식사했다. 돈가스와 피자를 먹으면서 유머가 섞인 수다를 떠니 가까워졌다. JM이와 그의 친구 P는 나에게 20살이 되면 술을 사달라고 했다. 내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술을 사달라고 하는지 의아했다. 나는 술의 세계를 잘 모른다. 그런데 ‘술 한잔하자’라는 말은 친한 사이에서 하는 말임을 알고 있다.

식사 모임이 있은 그다음 주에 교회에서 JM이를 만났는데, JM이가 어깨를 한번 가볍게 두드린다. 내가 “잘 지냈니?”라고 물으니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네. 잘 지냈어요”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표정과 말투가 엿보인다. 고등학교 남학생은 대체로 무뚝뚝해서 카톡에 답장이 거의 안 온다. 이런 모습은 낯설다. 변화다.

어느 날, JM이와 친구 P가 지각도 안 하고 일찍 교회에 와서는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는 밥을 사주었다. 선생님과 같이 밥을 먹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 추억은 사회에 나가서 험한 세상을 살때 응원의 의미가 된다.

그러다가 여름에 여름 수련회를 다녀온 뒤, JM이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수련회 후기를 우리 반과 함께 나누었다. 설교와 기도 시간이 짧아서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믿기지 않았다. 늘 뺀질거리고 교회를 안 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수련회의 전과 후로 JM이가 확 달라졌다. 표정과 말투가 부드럽다. JM이가 먼저 학생이나 교사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JM이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세례를 안 받았다. 이 해에 나의 반 학생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렇게 마음을 잡더니 고3을 잘 보내고 환경과 관련한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고등부를 졸업한 후에는 다른 부서에서 보조교사로 봉사했다. 어느 여름날, 시골 지역에 비전트립을 간다고 기도 편지를 가지고 왔다. 소정의 금액을 후원했다. JM이는 비전 트립을 다녀온 뒤, 후원자에게 주는 카드와 선물을 가지고 왔다.

“내년에는 외국으로 비전 트립을 가고 싶어요.”라고 나에게 말했다.

“어디로 갈거니?”라고 물으니 아직 모르겠다고 한다. JM이가 이렇게 봉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살줄은 몰랐다.

교회에서 지나가다가 JM이를 만났다. 나에게 인사를 하더니 JM이가 다가왔다.

“선생님 반 아이들은 어때요?”라고 물었다.

순간 감동이 왔다. 나의 반 학생을 생각하면서 딱히 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네가 많이 자란 것 같다.”라고 JM이에게 말했다. JM이가 한 질문에는 후배에 관한 관심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원래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곳이다. 교회를 다녀도 사람이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사랑이 안되고, 용서도 안 된다. 나조차 다른 반 학생에게는 무관심하다. 어떨 때는 다른 반 학생을 차별하기도 한다. 인간의 한계이자 연약함이다.

JM이가 인사를 나누면서 다가오고 말을 걸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도 JM이처럼 남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공감해 주고 싶다. 관심과 사랑이 없어서 거절 받고 소외되어 우울하고 외로운 영혼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싶다. 요즘 블로그에 글을 쓰면 받는 해피빈으로 복지센터에 기부하고 있다. JM이로 인해 ‘변화’하면 냉소적이기만 하던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노라’라는 시구절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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