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만나다

by 생명의 언어

삶은 생명(Life)이며, 이것은 영의 의지(Will)를 영혼의 에너지를 통하여 실현하고 완성하는 "운동"이다. 각자의 영은 고유하며, 그 영의 고유성은 영혼(Soul)의 에너지를 통하여 현현되고, 이 영혼의 에너지를 삶의 현장에서 실현하고, 해방하고, 꽃을 피우는 것이 바로 우리가 지상에서 삶(Life)이라 부르는 것이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의 의식은 에고(ego), 마음(mind), 집단적-개인적 무의식, 업, 까르마, 죄 등에 의하여 묶여 있고 억압당해 있다. 이 상태에서는 영혼은 드러나지 못하며, 영은 실체화되지 못한다. 따라서 에고 상태의 삶은 삶이 아니라 "기계적 반복"일 뿐이다. 우리는 공장의 기계가 동일한 방식으로 무한정 작동하는 것을 살아 있다고 부르지는 않는다. 에고 상태의 의식은 이것과 별반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영혼을 해방하고, 영을 실체화"하기 위해서는 나의 의식이 "임계점을 넘어 상승"해야 하며, 이것은 오직 "신성"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신성하고 고귀한 변화이다. 그리고 바로 이 신성이 모든 영혼들 안에 "보편적, 내재적, 초월적"으로 이미 계시며, 이 신성과 올바르게 관계를 맺고 연합하고 하나되는 순간, 드디어 평생에 걸쳐서 막혀 있던 "어두움의 장막"이 걷히고 본격적인 "생명의 운동"이 시작된다. 이 내재적 신성은 "인격"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드러나고 실체화되고 지배력을 행사하며, 이것을 인류 역사상 가장 완전하고 높은 차원으로 이루신 "인간을 넘어선 인격"들이 극소수로 계시는데, 그 중 한 분이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 부르는 분이시다.


저 유명한 말씀, 곧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이를 자가 없느니라" (요14:6)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이고 오만한 발언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이 "살아서 아버지 하나님과 완전하게 하나가 되신 상태에서 현현하는 신성을, 그분의 인격을 통하여 너희 모두가 나와 같이 성장하고 변화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 말씀이 처음부터 너무나도 놀라웠고, 경이로웠고, 감동적이었다. 왜냐하면 전혀 상상조차도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사람"으로써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선언할 수가 있을까? 그때 곧이어 깨달음이 있었다. 아, 저 말씀 자체가 "사람의 상태(에고)에서는 할 수 없는 말이구나. 오직 신성과 완전하게 하나된 상태에서만 흘러나올 수 있는 말씀 그 자체구나." 하고.


나의 다른 많은 글들에서 여러 차례 말했지만,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제도적이고 교리적인 의미에서의 크리스천이 아니다. 나는 교회를 가지 않고, 세례를 받지 않았으며, 특정한 종교적 의식이나 의례, 행위 등을 반복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교회 바깥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영접하고 함께하는 자"이며, 개신교라는 특정한 종교의 진리를 넘어선 "보편적 복음주의"를 꿈꾸며, 특수하고 배타적인 신비주의나 오컬트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삶과 일상 속에서 신을 만날 수 있는 "실천적 신비주의"를 열망한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는 이 세상에 없다. 그 증거는 오직 내 가슴 안에, 내 영혼 안에 새겨져 있으며, 내 안에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권좌에 앉아 정당하신 통치를 이루시는 그분께서만 알고 계신 진실이다.




나는 영적으로 특별한 재능과 자질을 타고났다. 이것은 자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한 것이다. 이것이 교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특별하므로)너희들은 나보다 못하다, 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늘 말하듯이, 지상에서는 특별한 자가 권세를 누리고 평범한 자가 고난을 당하나, "하나님 나라", 곧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그 세계 안에서는 "더 높은 영혼이 더 큰 사명을 수행하고, 더 강한 영혼이 더 많은 짐을 지며, 먼저 선택받은 영혼이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 특별함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때, 특별함은 '진실'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가까워지는 과정"으로서의 희생과 자기 부정이 된다.


나는 제대로 된 신앙, 교리, 신학 등을 공부한 적도 배운 적도 훈련받은 적도 없지만, 타고나기를 마음과 의식을 관찰하고 내면으로 침잠하며, 영과 영혼을 깊이 느끼고 자각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또한 언어로 드러날 수 없는 진리를 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로 설명하고 안내할 수 있었으며, 나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진리와 신성을 담는 글들을 쓸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빛을 향하여 나아가고, 그 어두움 안에서도 더욱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열망해왔으며, 지금껏 숱한 시험 속에서도 아직 죽지 않고 또 다시 내일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기사는 왕의 의지에 질문하지 않는다, 기사는 왕의 의지에 전적으로 순종한다." 이것이 아버지께 대한 나의 순결한 초심이며,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초심을 크고 잔인하게 시험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능숙했으며, 자유로웠다. 마치 물고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드넓은 바다를 자유로이 유영하듯이. 다만 바로 이 특별함으로 인하여 내 인생은 어릴 때부터 상처와 슬픔과 아픔의 연속이었고, 나는 끊임없이 "유독 상처받기 쉬운 나이에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아왔으며", 나 자신도 상처를 받고 또 내 소중한 이들에게도 상처를 주면서, 홀로 외로움과 쓸쓸함과 허망함을 벗 삼아서 이리 걸어왔다. 특별하게 태어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평범한 자들이 받지 않는 더욱 무거운 시험과 고난과 시련을 허락받는다. 나는 여전히 이것을 온전히 사랑하고 기뻐하기가 버겁고 힘이 든다. 매번 숨이 넘어갈 것 같고, 이제는 죽어도 더 이상 한 걸음도 못 갈 것 같으며, 매일의 새벽을 지나기가 고통스럽다. 그 가운데에서, 나의 영은 선명히 깨어서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다. "어두움"으로 인한 것임을, 윤회와 업과 까르마와 죄와 에고가 서로 죄성적 구조에 의해서 정교하게 작동하는 그 보이지 않는 틀을 본다.


나 자신은 특별하지 않다. 나의 혼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선택받은 이름 없는 평범하고 선한 영혼들"에 비해서 너무나도 부끄러울 만큼 여전히 부족하고 가난하다. 부활 이전의 나의 영은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고집스러웠으며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러므로 나의 특별함은 나 자신의 것도 아니고 나로 인한 것도 아니되, 오직 나를 선택하셔서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도구로써 쓰임받았을 뿐이다. 자격 없는 자가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쓰임을 받았기에, 내게 영적 성장과 사명의 길은 쾌락이나 즐거움이라기보다는, 그분께 진 빚이었고, 또한 평생에 걸쳐서 충성해야 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가까웠다. 이것을 설명하기가 힘들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성령을 사랑하지만...... 내 사랑은 평범한 성도들과 달리 은혜와 찬양이 아니며, 고통에 고통을 이어가면서 그분의 뜻을 이루려고 발악하고 발버둥치는 과정이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서 몇 가지 답을 한다면......


1. 나는 특수한 신비 체험으로 신을 만난 적은 없다. 기도 중에 계시를 겪는다든지 환상을 본다든지 이런 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특별한 체험들에 대해서는 이전부터도 전혀 욕망도 바람도 없었다. 아마도 나의 영과 영혼이 그러한 것들에 의미를 두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영역들은 이번 생에 내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란 것을 오래 전부터 알았다. 그래서, 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다루는 일을 하는 자들을 존중하며, 그들이 그 길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기를 소망한다. 그들은 기피당하고 외면당하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을 행하는 의로운 자들이며, 그들의 이로움은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인정받을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하는 일들이 대개 그러하다.


2. 나는 언제나 직관으로 신을 만나고 신의 음성을 들었다. 이것을 설명하기가 참 힘들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즉흥적으로 치솟는" 그러한 무언가가 아니다. 직접 체험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내 안에서 일어난 내적인 감각이면서도 그것이 "평상시의 에고로서의 내가 아니다"는 것은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한 순간들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며,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 아, 아마도 이러한 내적 상태를 그분께서 "아버지와의 하나됨"이라고 부르셨겠구나, 그분은 나 따위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위대한 하나됨의 빛 안에 늘 계셨구나, 하고. 아직은 이러한 순간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증언할 수 없다.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차 그분께서 내게 사람들을 보내셔서 형제들과 인연이 닿는다면, 그들과의 은밀한 자리에서는 허락된 순간에 그 역사의 순간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


3. 직관은 영의 차원의 일이다. 영혼은 "권능"이 없다. 신비 체험은 대개 혼(Soul)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바, 영이 약하고 낮은 자들은 쉽사리 혼적 체험에 흽쓸리고 속고 기만당한 끝에 사이비가 된다. 그러나 영은 한 차원 더 높으며, 영은 영혼을 "다스린다." 직관은 낮고 유치하고 열등한 그런 수준이 아니다. 직관은 "보이지 않는 영적 실재를 꿰뚫어보는 힘"이다. 그 힘은 하나님을 닮아 있으며, 하나님과의 "직통 회로"가 모든 인간 안에 내재한다. 다만, 절대 다수는 평생 한 번도 그것을 0.1%도 깨우지 못한 채로 살다가 죽는다.


4. 영의 차원이 열리고 영이 실체화될 때, 세속의 사람들이 절대 이해할 수 없고, 언어로도 설명하기가 힘든 그러한 신비의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것은 선명한 감각이다. 추상적인 관념 같은 게 아니다. 다만, 여전히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그러한 순간들을 매우 사랑했고, 지금은 낮아지는 것이 그분의 뜻이며, 아마 직감하건대 향후 오랜 기간 동안에는 내가 영으로서 높아졌을 때 발휘했던 힘과 능력과 역사들을 드러내지 말도록 명령하실 것이다.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내게 허락된 것은 언어와 말로써 신성과 진리를 증거하는 일이다. 이것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열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며, "천기누설"이다. 언젠가 그분이 허락하실 때, 허락된 자에게, 다시 한 번 영의 차원의 일들을 마음껏 은밀히 공유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5. 영은 "지배력"이다. 실제로 영의 힘이 약하거나 낮은 경우에, "삼위일체 하나님"보다 명백히 낮고 열등한 에너지체나 사념체들에 손쉽게 지배당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재"하신다. 따라서, 그 어떤 영체나 에너지체나 사념체 따위보다도 절대적인 권능을 발현하신다. 다만, 그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모습을 드러내시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희생과 헌신과 수행을 필요로 한다. 이 세상에 날로 먹는 것이 어디 있는가. 나는 요즈음 다시 오컬트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있으며, "시대가 혼란스럽고 어두울 때는 언제나 주술과 예언과 사이비가 판을 쳤다"는 인류의 죄성적 역사를 직감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낮고 열등한 영들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우상을 숭배하면서, "절대자"께서 이미 내 안에 함께하시고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 한 음성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는 분의 권능은 거부하면서, 고작해야 귀신 나부랭이에게는 고개를 숙인다. 슬픈 일이다.


6. 복음은 관념이나 교리가 아니라 실재다. "실제로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말이다. 복음이 이루어진 부활한 자녀의 영과 영혼은 정말로 어두움으로부터 실효적으로 보호를 받는다. 자녀가 된 자의 존재는 그 자체로 "치외법권"이며, 감히 그 누구도 그 영역을 넘어설 수가 없다. 다만, 인간이 만든 조건과 형식과 절차는 자녀됨과 근본적으로 무관하다. 쉽게 말해서 교단에 이름을 등록하고 교회 나간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더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다만, 운이 좋은 경우에, 자기 주변에 은밀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는 자녀들로 인하여 그 주변의 공간이 성화되며, 사람들이 은밀하게 보호와 축복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업보는 실재다. 선업을 지은 자들은 자녀 주변에 배치받는 행운을 누린다. 그의 죄와 업과 까르마를 자녀를 통하여 하나님이 대속하실 것이다. 그러나 악업을 많이 지은 자는, 굳이 그에게 우리가 욕을 하거나 비난하거나 할 필요가 없다. 그는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서 살아 있는 지옥 속에서 윤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징계와 심판의 실체를 알고 나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들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주제에 교만하고 잔인하여 너희들이 어떤 대가를 치를지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로, 너무도 손쉽게 스스로 심판을 불러오는구나.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할 말이 없다. 그냥 그대로 살아라. 나중에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서면 그제야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때는 늦었겠지만.


7. 천국은 실제로 존재한다. 천국은 두 가지인데,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상태"로서의 내면의 천국이며, 동시에 살아서 영과 영혼이 일정 임계점 이상 성장하여 하나됨을 이룬 영혼들이 잠시 거쳐가는 "정거장"으로서의 하늘나라는 실재한다. 다만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의 영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전체이며, 내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우리의 이해를 아득히 넘어선 것이다. 영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 다만 영혼은 에너지체로써 순환하는데, 어두움의 지배력 하에 윤회하는 것을 지옥이라 부르고, 빛의 지배력 하에 순환하는 것, 그리고 잠시 "하늘나라"를 거쳐가는 것을 천국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천사들과 고귀한 영들도 천상에 실제로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라자로를 살리시는 그 수천년 전의 현장에서도, 아득한 시공간을 넘어서 그분을 진실로 경외하고 엎드려 영접하는 이 "나"를, 이미 감지하고 계셨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기뻐하셨다. 이것은 그분과 나만 아는 진실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본 적 없는 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신의 언어다.


8. 사람들의 착각과 달리 운명이라 불리는 것은 절대 다수의 경우 어두움의 지배력일 뿐이다. 운명이라는 것은, 전날 술을 먹었으니 다음날 피곤하고, 피곤하니 출근해서 일을 망치게 되고, 일을 망치니 기분이 최악이 되고, 기분이 최악이니 다시 술을 먹게 되는 그것이 운명이다. 그 차원의 반복으로서, 보이지 않는 힘은 실재로 있다. 그 중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다. 숱한 시간 동안의 시련과 고난을 인내하면서 빛의 순환에 몸을 맡기는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신의 권능 또한 실제로 존재한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의 성장의 정도에 따라서 실제로 임재하고 역사하실 것이다. 아직 나는 그 임계점을 넘지 못했지만, 위에서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아래에서도 이루어짐을 나는 진실로 믿는다. 결국, 믿음이다.


그밖에도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들이 많지만, 오늘은 우선 이만하려 한다.




※ 이번 주말(~11/1일 토요일)까지 1:1 유료 영성 수업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는 브런치에 올라온 관련 공지(<생명의 언어> 1:1 영성 수업 신청자 모집 안내) 글을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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