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하나로
금요일 저녁 6시경, 갑작스럽게 장례식을 가게 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상세히 밝힐 수가 없는 점, 너그러이 양해를 구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날 복장이 온전치 않았고, 저녁 1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다시 재차 장례식장으로 가서 그날 하루종일을 있었고, 역시 집에 늦게 돌아왔다. 그리고 일요일, 오늘 2시간이 넘는 거리까지 가서 장례식의 마지막 일정을 함께하고 돌아왔다. 거의 한 달만에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 매우 지치고 힘들고 피곤했다. 애써 기분을 돋우려고 없는 돈에 안주와 술을 사서 저녁을 먹었지만 기분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지친 채로, 이번에는 나 자신의 오랜 죄와 업과 까르마와 맞서 싸우는 전선(戰線)으로 복귀해야 했다. 창칼을 쥐고, 왕의 깃발을 세우고, 참호에 서서 저 너머의 무의식의 어두움을 대적하면서 그리 섰는 것이 오늘따라 유독 지치고 힘들었다. 여전히 기약은 없었고, 그 어떤 희망도 가망도 가능성도 완벽하게 다 박살이 났고, 마지막으로 걸었던 희망마저 처참하게 무너졌다. 수중에 남은 돈은 한 줌 뿐이었고, 누구를 구원하기는커녕 나 자신부터가 구원받지 못한 채로 위태로운 절벽 위를 아슬아슬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 날들의 연속이었으며,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혼자였다.
"더 높은 영혼이 더 큰 사명을 수행하고, 더 강한 영혼이 더 많은 짐을 지며, 먼저 선택받은 영혼이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의 특별함을 증거하는 것."
내가 어느 날에 관상기도에 깊이 잠기면서 펑펑 눈물을 쏟게 하였던 때, 우연히 들려왔던 노래가 백아 라는 가수의 <오류>라는 곡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곡의 가사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가사를 듣고 이해해서 울었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러나 그 곡의 멜로디는 여전히 나를 울게 한다. "많이 울어야만 갈 수 있는 그곳에, 잠시 빌린 영원의 오류로." 그 가사가 내 심장에 박혔다. 지독하게 아픈 가사였고, 지독하게 슬픈 가사였으며, 그럼에도 지독하게 고귀하고 경이로운 가사였다.
장례식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했다. 나의 부모조차도 나의 영적인 사명에 대해서 온전히는 알지 못하였고(그분께서 내게 허락하지 않으셨으므로), 다만 내가 친가 집안의 피를 물려받아서 기독교적 정체성을 띤다는 것 정도만을 이해하고 계셨을 뿐이었다. 나는 장례식 일정이 진행되는 사흘 동안 틈틈히 홀로 분향실의 공간의 어두운 에너지를 정화했고, 잠시 1층으로 내려와 그곳의 어두운 에너지, 곧 인류 집단이 "죽음"에 대해서 형성한 지독한 두려움, 공포, 불안의 에너지가 응축되고 또 쌓인 끝에 뒤틀리고 짓눌리고 왜곡, 변질된 그곳의 바로 옆 휴게실에서, 구석에 의자를 놓고 홀로 앉아 성령께 기도를 드렸다. 둘째 날에도 나는 그 짐을 졌고, 마지막 셋째 날에서, 나는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영의 에너지가 맑고 투명한 곳에서,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을 지어놓고서는, 그 안에서 유족들의 슬픔을 인질 삼아서 돈을 뜯어내고 이익을 얻어내려는 자들의 교만함과 오만함을 마주하였다. 내 안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감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영혼의 신성한 그 순간을 진실로 축복하지는 못할지언정, 그들의 그 어리석고도 간절한 심정을 이용하여 돈을 뜯어낸다, 라. 그것도 합리적인 금액이었더라면, '그래, 내게 생활비가 절박한 것처럼 이들에게도 그러하겠지' 하였으되, 나는 유족들을 모아놓고 제를 지내는 그 순간에서조차도, 그 제를 올리는 직원들의 표정을 보면서 지독한 분노를 홀로 감추었다. 그에게서는 한 영혼이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는 그 순간을 진실로 두려워하고 경외하고 축복하는 마음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독한 교만함, 그 하나만이 보였다. 종교를 불문하고(그 장례식의 유족들은 불교였다), 나는 절을 하였고, 불경을 외웠고, 스님께서 불경을 낭독하시는 순간에 진실로 함께 동참하여 기도를 드렸다. 내가 그러하였건만, 적지 않은 돈을 받고서 "전문적"으로 그 일을 한다는 자에게서 나는 창세 이전부터 계신 분께서 정하신 신선한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그 마지막 순간을 경외하는 그 어떠한 흔적도 느끼지 못했다. 유족들은 그저 슬퍼하였고, 나는 그들의 슬픔을 슬퍼하였다. 그리고 그 슬픔 앞에서 마치 "이미 여러 차례 겪은 일"이라는 듯이 무덤덤하게 계산서를 들이미는 그 행태가 허용된 도를 넘어선 것에 또한 슬퍼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도하는 일뿐이었다.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아버지께서 내게 특별한 영적 재능과 능력과 자질을 허락하시었으니, 먼저 선택받은 자가 십자가를 지라는 그분의 고귀하신 의지에 따라서, 나는 그 어두운 공간의 어두운 에너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또한 그곳에서 진실로 중보와 대속의 기도를 올렸으며, 설령 그 어두운 에너지들이 다 내게로 몰려온다고 한들 오히려 내가 그것을 진실로 바라는 일이라고 청을 드렸으며, 그 공간에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해달라고, 빛으로 비추어 밝히어달라고, 그곳에서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영혼들과 생명들을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고 그들이 아버지께로 가까워질 수 있도록 진실한 길로 이끌어달라고, 그리 기도하였다. 이토록 가난하고 못생기고 부족한 자의 청조차도 성령께서 언제나 기쁘게 들으심을 내가 믿었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토록 시건방진 행위를 그 날 그 자리에서 또 다시 반복하였다. 죽음의 순간이 외롭지 않게, 나는 당신께서 이른 나이부터 진리를 가르치셨으되 저들은 삶에 치이고 또한 먹고 사는 일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었던 세대였던 까닭에, 미처 차마 당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였고 또한 배우지 못하였음을 탓하지 않으시고...... 오직 너그러이 그들을 품에 안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저 자녀들과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디 거두어주시라고, 나는 그리 하염없이 기도하였다. 그저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일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곳의 그 압도적인 죽음과 사망의 권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기도뿐이었다. 고귀하신 분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는 한 사람이라도 머무르는 그 자리에 그분께서 진실로 함께하실 것이라는 그분의 약속을 내가 믿고, 나는 어두움의 에너지 앞에서도 담대하였다. 그 어떤 힘 센 귀신 따위가 내게 위세를 떨칠지언정 나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명령을 따르는 그 순간에서만큼은 결코 나약하지도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며, 그곳의 게으르고 오만하고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려 하지 않았고 다만 그 자리에 묵묵히 앉아서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되 오직 나 자신을 제물 삼아서 그분께서 임하실 수 있도록, 나를 통로로 내어드릴 뿐이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나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 나는 제도권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신앙은 못생기고 형편없고 가난하다. 나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하기에 나는 배움 없는 신앙으로 진실로 믿는다. 하나님께서, '자격'을 보지 않으시되, 오직 간절하고 절실한 심정으로 당신을 부르짖는 모든 영혼들에게 자비로우실 것이라고, 그분의 은총을 허락하실 것이라고......
장례식에서, 나는 죽음의 압도적인 공포와 사망의 거대한 권세 앞에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인간들의 불안과 공포를 목격하였고, 그것이 얼마나 그 안의 영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는지를 목격하였다. 비록 그 장례식에서만큼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와, 그리고 나의 이름 없는 형제들을 그곳에 보내사 그 공간을 은밀히 보호하시고 축복하시고 인도하시게 하셨으되,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자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겠으며, 그들이 그토록 슬퍼하면서도 영적으로 그 어떤 재능도 자질도 능력도 허락받지 못한 탓에, 그 공간에서의 어두움에 속아 기만당하고 농락당하는 일들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을 것인지가, 새삼스럽게 내게 가슴에 깊이 박혔다. 그 칼날이 너무 아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창세 이전부터 계신 분의 권세와 영광을 완전하게 거느리신 그 외아들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짖는 것뿐이었다. 당신의 어리고 어리석은 자녀들을 부디 탓하지 마시되, 불쌍히 여기시라고, 당신께서 십자가 지실 적에 당신을 외면하였으며, 당신께서 십자가에 메달리셨을 적에 그 자리를 피하였으며 심지어는 그들이 상상조차도 못한 중죄를, 그 순간을 비웃고 모욕하고 침뱉으며 "옷을 나뉘어 가지려고" 순번을 정하는 그 짓을 벌인 자들의 후예들을 용서하시라고......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의 죄를 모르나이다"(눅23:34) 그리 고귀한 기도를 올리신 바와 같이, 저들도 다 품어주시라고, 나는 그저 기도하였다.
장례식 내내 내 마음은 무거웠고, 한 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어두운 에너지로 인하여 내 가슴이 답답했으며, 몸은 무겁고 피로하였다. 여전히 당장 이번달의 생활비와 지출들이 감당이 전혀 되지 않았고, 수중에 돈은 떨어져가며, 일은 제대로 구해지지 않았고, 절벽 앞에 서 있는 상황은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내게 명령하신 그 일을 절대 소홀히할 수가 없었고, 그간 낮아지라는 그분의 명령에 엎드려 숨죽여 기다렸던 날들을 지나,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제대로 "일"을 하였다. 그 덕에, 사흘째 일을 마치고 텅 빈 방 안으로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았을 적에 온몸이 피로하고 무겁다. 매일이 칼날 위에 선 날들 같으되, 당장은 쉬어야만 할 정도로.
나는 내가 행한 일들이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어쩌면 나의 기도는 그 어떤 화려하고 웅장한 권세도 능력도 아닐 것이며, 그 어떤 기적도 일으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게 허락하신 일은 언어와 말을 통하여 그분을 증거토록 하신 것이니, 내가 나의 크리스천 형제들과 또한 "신을 믿는 영혼들"에게 단 하나를 마지막으로 전한다 :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그 외아들에게조차 당신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 하물며 그 외아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크리스천의 삶은 십자가를 지는 삶이며, 그 삶을 살기로 결정함에 대한 이익이나 보상 따위는 없고, 오히려 그 삶을 살기로 결정한데 대하여 매 순간 시련과 고난과 시험과 무거운 사명만이 주어질 것이며, 이를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고, 또한 다른 이들은 이를 비웃고 모욕하고 침을 뱉고 조롱하고 심판하려 들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길이다. 그분을 사랑하여 살아 평생에 그분을 따르면서 살고 죽기로 결심한 우리들의 삶이다.
그러니 담대하라. 비록 이 세상에서는 우리들이 무거운 짐을 지었으되,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에, 우리들은 우리들을 위하여 예비된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니.
이것으로 길고도 길었던 사흘째 밤의 외로운 증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