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가까워진다

by 생명의 언어


연말이 가까워진다. 다사다난했던 2025년도 이제 저물어간다.


올해는 실로 길고도 고통스러웠던 시기였다. 봄이 되면서 작년부터 그나마 한 뼘이라도 유지했던 나의 영토와 지위는 모두 빼앗겼고, 인연들은 강제로 이별을 겪어야 했으며, 여름이 지나면서는 삭막한 대지에서 겨우 피어나 희망의 새싹 하나조차도 무참하게 다시 짓밟히는 과정을 목격해야 했다. 내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려 일을 시작했으나, 어두운 에너지가 몰려왔고, 내 의사와 상관없는 억울한 일들과 온갖 문제들이 터졌으며, 결국 예상보다 훨씬 일찍 일을 긴급히 그만둬야만 했다. 가을이 가까워지면서 생활비는 점점 떨어졌고, 지난달부터 나는 눈앞의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음을 인정해야만 했으며, 여전히 일은 구해지지 않고, 방향은 결정되지 않았으며, 문은 열리지 않았다. 2025년은 시련과 고난의 해였다.


그나마 지난 수 년간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 성장해왔떤 결실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이미 다 포기하고 어디론가로 숨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도망치지 않고, 이 길을 끝까지 걷고 있다는 것이 나의 자유의지이며, 나의 성장의 열매이다. 여전히 나는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 가운데에서 아무렇게나 죄와 악에 휘둘리면서 살아남기에 급급한 동물로써 사는 게 아니라, 명확한 의지와 목적성을 가지고 시련과 고난 속에서 신앙과 믿음으로 나아가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이것이 내게 지극히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이 과정 속에서 내가 영이 크게 정화되고, 상승하고, 깨어나는 것을 느끼며, 이 가운데에서 어쩌면 나는 살아 있음을 자각하는지도 모른다. 영의 의지가 그러하다면, 시종이나 하인에 불과한 자아는 항복하고 순응해야지, 어쩌겠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더라도 이미 에고는 영이나 영혼보다 압도적으로 낮고 열등하며, 복종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시기에서 나의 지혜로움은 나의 이익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인 좌절과 슬픔과 고통과 제약일 것이다.



그럼에도, 무언가가 조금씩은 진행되어 간다는 것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장례식을 다녀오면서 보이지 않는 흐름이 변화한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최근 몇 주간의 경험을 통해서, 재차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의 변화가 보이는 차원에서 변화로 이어지려면 시차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것도 직감했다.


에고의 욕망과 공포를 내려놓으면, 영의 의지와, 영혼의 운동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지금 시기에서 나의 영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영혼이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는지를, 다 알 수 있다. 다만 공포와 욕망이 눈을 잠시 가리웠을 뿐. 이미 다 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려놓고 순응할 때이다. 영의 의지에 강제로 역행할 수 있겠지만, 그리하면 잠시 편안할지언정 결국에는 내게 독이 되는 사망의 길임을 안다. 그러나 영의 의지에 순응한다면, 잠시 고통스럽겠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살 길이 열릴 것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올 겨울은 수행자로서 은둔자적 삶을 살고자 한다. 이제 다시 고삐를 쥐고, 단식과 수행식을 이어가면서, 당분간 글쓰기에 매진하려고 한다.


오쇼젠 타로는 이제 마이너 아르카나에 접어들면서, 화자(話者)의 전환을 직감하고 있다. 좀 더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듯이" 써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메이저 아르카나라는 큰 산을 넘었기에, 이제 나머지들은 비교적 마음이 편안하다. 물론 공교롭게도 요한복음 이야기도 1장 초반부의 형이상학적 신학적 큰 산을 거의 다 넘었기에, 이후부터는 좀 더 편안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 다른 브런치북 시리즈를 써야 할 것 같다는 고민이 드는데, 무엇을 쓸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좀 더 실재적이고, 삶과 일상 속에서 함께할 수 있는 그러한 방식의 신앙과 영성...... 으로서의 무언가, 인데, 여전히 잘은 모르겠다. 잠시 쉬고 재정비하다 보면, 위에서부터 명령이 하달될 것이다.



날씨가 꽤 춥다. 이 글쓰기의 여정에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께 부활의 희망이 함께하시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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